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tain가얏고 Apr 25. 2024

엄마에게도 꿈이?

“수술 날짜 잡고 왔다.”

“갑자기요?”

“내가 코만 높으면 소원이 없겠다.”

“엄마는 코보다 쌍꺼풀 수술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눈은 뭐하러 한다냐? 옆 동네 여자가 한 거 봤는데 못쓰겠더라. 난 코만 하면 돼.” 


 시골 육 남매 눈에 각인된 어머니의 이미지는 논밭에서 구부정하게 김을 매는 어머니,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는 억척스러움이다. 얼굴이 못나서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는, 타고난 팔자라는 어머니의 한탄을 듣고 자란 탓에 어머니는 영 못생겨 보였다.  그와 달리 어머니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코가 크고, 눈도 매력적인데 피부까지 뽀얀 잘생긴 사내다.  머리가 좋고 솜씨도 좋은 아버지는 못 하는 일이 없다. 단지 가난이 문제고 장남이라는 처지가 걸림돌이다.  딸만 내리 넷을 낳은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감내해야 했다. 드디어 아들을 낳고 기세등등하던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더 얻겠다고 낳은 막내딸에는 그만 목놓아 울었다. 


 인터뷰 도중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다큐의 한 장면에 따라 울컥한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 괄괄하고 거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여느 어머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이다. 

“내 상처를 건드리면 안 돼. 들춰내면 낼수록 너무 아파서 안 돼. 그대로 묻어 둬야 해.”     

 나도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 세월을 견디셨어요? 진짜 대단해요.” 

“알아주면 다행이고. 인생이 다 그런 거다.”


 어릴 적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딸들과 놀아주는 아버지다. 

 “아빠가 서울 보여줄까?”

 “응!”

 금세 딸을 머리 위까지 번쩍 들어 올리는 아버지다. 

 “서울 보이냐?”

 “아빠, 나도! 나도!” 

 밤이면 아버지 주위에 둘러앉아 옛날이야기를 듣는다. 여러 번 들어도 재밌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자꾸만 살이 붙어가고 우습다. 깔깔대는 딸들에 신이 난 아버지가 이번에는 노래를 지어 부른다.    

 “내가 아빠 옆에서 잘 테야.”

 “아냐, 내가 잘래.” 

 아버지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옥신각신하는 우리 자매다. 어머니는 항상 어린 동생 차지여서 어머니 곁에서 잠든 기억이 거의 없다.


 매번 아버지 편을 드는 딸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어머니다. 모든 문제를 본인의 못생긴 얼굴 때문으로 여기는 어머니의 낮은 자존감은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튄다.     

“네 아빠 성질 더러운 건 모르고, 잘생겨서 다들 사람 좋다고만 한다니까.” 

“대신 엄마는 얼굴이 항시 그대로잖아요.” 

“하긴 사람들이 나보고 늙지를 않는다고 하드라.”

“맞아요, 엄마는 얼굴이 동안이야.”    

살짝 편들면 금세 마음이 누그러지는 어머니다.    


“수술 날짜가 언제라고 했죠?”

“아, 그거? 취소했다.”

“왜요?”

“수술방 앞까지는 갔는데 무서워서 도저히 못 들어가겠더라. 그래서 못 한다고 도망 나왔다.”

“...”    


 며칠 후 동생 집들이에서 만난 어머니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놀란 남동생이 묻는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요?”

“아니야.”     

일제히 어머니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눈치 없는 셋째 사위가 재차 묻는다.

“장모님, 대체 어디서 넘어지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에 뭐가 나서 좀 뺐어.”   

 뽀얀 피부가 소원인 어머니가 눈엣가시인 잡티를 제거한 것이다. 어머니도 여자인 것을 다들 잊고 산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요?”

“나? 글쎄다.”

“대학에 갔더라면 배우고 싶었던 거라든가?”

“이쁜 옷 만들고 하는 패션 디자이너?” 

 뜻밖의 대답에 적잖이 놀랐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유난히 옷에 집착한다. 먹고살기 힘들어도 딸에게 원피스를 입히던 어머니다. 젊은 새댁 옷장 안에는 형형색색의 옷감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장에 가는 날이면 단골 양장점에서 본인 스타일 대로 주문한 옷을 맞춰 입고 맵시를 뽐낸다. 어머니의 꿈이 디자이너였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배움에 대한 열망을 오롯이 자식에게 투영했던 어머니다. 자신의 꿈을 입 밖으로 꺼낸 것도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7남매 중 장녀인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 탓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배움에 목말랐던 어머니는 농한기가 되어 여유로워지는 겨울철에는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딸이 채점한 100점이란 점수를 받아 들고  활짝 웃는다. 길을 걷자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간판에 써진 알파벳을 읽어 달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들이 어머니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임을 알았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인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니까 으레 그러는 줄 알았다. 엄마는 항상 그래왔고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자식은 부모의 피눈물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던가?  우리 육 남매의 스폰서는 부모님의 희생이다.     


"또 사 드릴 테니 좀 버리세요.”

“아냐,  일할 때 입으면 좋아.”

 옷 하나 버리려고 해도 세심한 검열을 거쳐야 겨우 버릴 수 있다. 어머니의 옷 욕심을 꼭 닮은 셋째는 사고 또 사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옷도 많다. 동생이 웃으며 말한다. 

“언니, 새 옷 사기 전에 옷장을 열어봐. 그러면 맘이 바뀔 거야.”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옷이 남편 눈에 띄었다. 마침 뉴스에서는 섬유로 인한 쓰레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심코 사고 싫증이 나거나 유행이 지나면 버리는 옷이다. 그런데 재활용되는 옷보다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 지구촌 곳곳에 쌓이고 있는 옷이 더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세탁할 때에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점도 새삼스럽다.

“이건 분리해야지. 같이 버리면 어떡해?

"..."

“깨끗하게 씻어서 넣어야죠.”    

"부인도 옷을 좀 그만 사는 건 어때?"

작가의 이전글 별을 닮은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