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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괴물 이야기

나, 떨고 있나?

by captain가얏고

우리 냉동고에는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커다란 생물이 잠들어 있다. 연분홍색 벚꽃 잎을 닮은 비늘 아래로 감추어진 크고 탄탄한 육질을 자랑하는 생명체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짝의 욕심으로 들여놨는데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나는 주기적으로 언니네 냉장고를 털러 간다. 수개월 전 어느 날 '무서우니까 네가 가져가'라는 말에 우리 집 냉동실로 입성하였다. 그건 제주 앞바다에서 잡혔고, 급속 냉동을 거쳐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언니 집 냉동고에 들었다가 우리 집까지 머나먼 여정이었다.


주인공은 언니의 지인이 낚시로 잡았다는 거대 물고기다. 유독 겁이 많은 언니가 택배 상자를 열어보고 기겁했다. 그것의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하고는 곧바로 요리를 포기했다. 언니는 겁이 많은 만큼 포기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낚시에 성공한 지인에게는 기쁨의 포효를 안겨 주었을 존재가, 너른 바다를 떠나서 찬밥신세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름 모를 물고기는 압축팩에 담겼어도 여전히 살이 통통한 채다. 해동만 하면 곧바로 팔닥거릴 것만 같은 지느러미에 생생한 눈동자는 내가 보아도 꽤나 인상적이다. 남편은 낚시꾼 기질의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물고기보다 더 크게 눈알을 굴렸다.


“이야~~ 이 정도면 회를 떠도 양이 상당하겠는걸?”

“이걸 어떻게 요리하지? 형님께 드릴까?”

“아냐, 놔둬. 내가 해볼게”


남편의 발 빠른 대답은 '어느 세월에?'라는 핀잔을 조용히 목구멍 안으로 집어삼키게 했다.


군침까지 흘리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남편을 보니 한숨이 난다. 행여 변덕쟁이 아내의 마음이 바뀔까, 잽싸게 냉동고 젤 아래 칸 깊숙이 숨기는 남편이다. 평소 집안일을 그처럼 빨리 처리해 준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친다.


사실 나란 사람은 죽은 전복의 이빨도 빼내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육고기는 물론이고 생선 앞에서 칼을 들면 괜히 죄짓는 기분이라 만지기를 꺼리는 손이 된다.


결국, 물고기는 냉동고에서 거의 반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냉동실 서랍은 심해의 고요한 수면 아래 괴생물체를 집어삼켰고 꽁꽁 가두었다.


냉동실을 열면, 그것의 눈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왜 아직도 나 안 꺼내?”

“무섭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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