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마지막......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아내는 인센스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자격증을 따고, 필요한 물품을 하나둘 준비해 갔다. 공간이 필요해졌고, 결국 지금의 공방도 옮겨야 했다.
모든 걸 한 번에 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씩, 천천히.
공방을 옮기기 위해 친구 이름으로 되어 있던 사업자와 트럭을 내 명의로 이전해야 했다. 친구에게 말을 꺼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그리고 처음 투자했던 금액을 돌려주었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는 부대비용은 묻지 않았다.
"그건 그냥 내가 쓴 거라고 생각하자."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고마웠다.
공구들도 돌려주기로 했다. 친구는 말했다.
"돈 몇 푼 때문에 기분 상하면 아깝잖아. 그냥 형네 창고로 돌려놓자."
이미 우리는 충분히 공구를 구비해 뒀고, 그 제안은 오히려 우리를 가볍게 만들었다.
공방은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나무와 바람이 머무는 그 자리에, 아내는 클래스를 준비하고, 나는 오브제를 만들었다.
봄이 왔다. 따뜻한 바람이 창틀에 스쳤고, 아내는 조심스럽게 클래스를 시작했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첫째 민이도 유치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제주살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내의 클래스는 천천히 자리를 잡아갔다. 소품샵이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다양한 시도들이 오히려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수영선수 출신의 정유인 씨가 클래스에 참석해주기도 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지기도 했다.
시간은 흘렀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저물었다.
그리고, 겨울.
찬바람이 들이치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난로 앞에 앉아 나무를 사각사각 깎고 있었다.
작업실 가득 퍼지는 나무 냄새, 그 속에서 문득 떠오른 이름 하나.
어릴 적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오래간만에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오래전 이야기를 나눴고, 웃었고, 조용히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직전, 친구가 물었다.
“아버지는 잘 계시지?”
그 순간, 가슴 어딘가가 뻐근해졌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먼저 흘렀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사고 이야기, 그리고 그래서 제주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통화를 끊고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난로 앞에 앉아, 손에 쥔 조각칼은 멈췄고, 마음은 무너졌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병원에서 연락 왔어. 지금 가고 있어. 다행히 누나가 있어서 같이 가는 중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도 안 되는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눈물만 흘렀다.
모든 신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이번에 처음으로 명절에 못 갔던 거야… 왜 하필 지금 이런 시련을…”
그 해, 폭설로 제주 하늘길이 모두 막힌 설 명절이었다.
그렇게라도 가지 못한 내 발이 원망스러웠다.
1시간쯤 지났을까.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눈 속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몸이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