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우리 부부의 눈물만큼이나 뜨거웠던 계절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그즈음, 둘째 윤이는 첫째 민이의 넘치는 사랑과 걱정을 등에 업고 다행히 좋은 병원을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알레르기라는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제법 먼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치료를 받았고,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웃고, 잘 먹고, 씩씩하게 자라는 우리 복덩이로 돌아왔다. 마음 깊이 다행이고, 감사했다.
여름이 그렇게 지나가고, 바람 끝이 서늘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결심했다.
찬바람이 불어 더 이상 플리마켓을 열 수 없을 때까지, 후회 없이 일하자고.
그렇게 나는 쉬지 않고 만들고, 팔고, 또 만들었다. 시간과 체력을 쏟아붓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점점 몸은 무거워졌고,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조금씩 선선해지던 저녁.
민이가 저 멀리서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손에 톱을 쥔 채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고, 민이는 그런 나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나도 아빠랑 캠핑카 타고 여행 가고 싶어요."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우리도 캠핑카 사자."
그 말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 같기도 했다.
그러나 민이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와, 진짜?"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아이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언제?"
그 짧은 한마디가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사서 언제 가냐는, 그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말속에는 '아빠, 진짜 나랑 시간을 보낼 수 있어?'라는, 너무도 슬픈 진심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캠핑카를 살 수는 있지만, 그걸 타고 어디론가 떠날 시간은 없는 사람.
지금의 나는, 매일을 만들고, 또 팔고, 내일을 위해 또 준비하는 사람.
아이에게 ‘아빠’는 공방에서 먼지 묻힌 채 땀 흘리는 모습뿐이었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라도 와야 비로소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는, 그런 아빠였다.
그조차도 대부분은 작업실 안에서 바쁘게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민이의 말이, ‘언제?’라는 그 단어 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을 계속 건드렸다.
일주일 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식히려 해도, 아무리 일에 집중하려 해도, 내 마음은 이미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결국 나는 솔직하게 마주했다.
지금처럼은 안 된다.
이대로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결론 내렸다.
플리마켓을 벗어나자.
그리고 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
더 이상 날씨에 휘둘리지 않고,
더 이상 ‘많이 만들어야만 버틸 수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자.
적게 만들어도, 더 깊이 있게.
수량이 아닌, 진심과 퀄리티로 승부해야 했다.
내가 만든 것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위한 작업을 하자고.
그래야만 내가 지치지 않고 오래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내 아이들과 더 많은 계절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매일같이 현금이 들어오던 생활, 눈앞의 현실을 접자고 말하는 내가 아마도 현실감 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나 역시 두려웠다.
정말 이 길이 옳은 걸까?
이만큼 벌 수 있을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긴 대화를 나누었고, 결국 결정했다.
지금을 버텨내기보다,
미래를 준비하자.
그래서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모하지만 간절했던,
우리 가족의 새로운 계절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