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겨울은 처음이지
둘째가 태어났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조리원에 들어갔다.
나는 첫째와 단둘이 집에 남았다.
코로나, 낯선 타지, 그리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현실.
우린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감당해야 했다.
나는 첫째와 고군분투했고, 아내는 조리원에서 둘째와 씨름했다.
차가운 겨울, 우리는 육아로 땀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행히 플리마켓 시즌이 끝난 후라 시간은 있었지만, 수입은 0원.
처음 겪는 겨울, 갑자기 늘어난 식구들.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었다.
나는 작업실에 나갈 수도, 집 밖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아내는 불안해했고, 걱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매년 겨울이 이러면 어떡하지…"
그 말은 한숨처럼, 기도처럼 흘러나왔다.
다행히 시즌 동안 모아둔 돈이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그해 겨울을 겨우 버텼다.
다음 해 4월까지, 수입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4월.
플리마켓이 열렸고, 나는 다시 밤낮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름이 깊어갈 무렵,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겨울을 버티기 위해, 나는 내 몸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숨 막히는 더위 속, 쉴 틈 없는 노동.
몸과 마음이 조금씩, 조용히 닳아가고 있었다.
아내 역시 지쳐 있었다.
두 아이를 독박 육아하며, 그녀의 하루는 반복되는 희생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무언가 잘못된 걸까.
둘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달아오르더니, 각질이 일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만지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릴 만큼 아파 보였다.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병원을 일곱 군데나 다녔지만,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아내는 점점 예민해졌고, 첫째는 엄마 아빠의 눈치만 보며 하루를 보냈다.
첫째가 둘째를 자꾸 만졌다.
우리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나는 첫째와 단둘이 산책을 나갔다.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아이가 좋아하는 사탕을 건넸다.
첫째는 활짝 웃었고, 나는 조심스레 부탁했다.
"민아, 윤이가 많이 아파.
그러니까 당분간은 안 만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민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사탕을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나 이거 안 먹을래요.”
“왜? 사탕 좋아하잖아.”
조심스럽게 다시 묻자, 아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이가 귀여우니까 만지는 거예요… 형아가 만져주면 안 아플까 봐…
그래서 자꾸 만졌어요.
나 사탕 안 먹고, 윤이 안 아프게 만질래요.”
그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그때 민이는 고작 만 다섯 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나는 아이를 꼭 안고 울었다.
한여름 밤, 함덕 바닷가 앞에서
“꺼억, 꺼억…”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 두 번째 여름은
흐르는 눈물처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