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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복상점

작은 기적의 탄생

by 나무를만지는


플리마켓을 시작한 그날, 첫 손님이 물건을 사갔다. 많이 만들진 못했지만, 오후 늦게부터 밤 9시까지 15만 원의 매출. 처음 해보는 장사치 고는 꽤 신기하고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내 물건을 들여다보며 "예쁘다", "멋지다" 말해줄 때마다 마음이 들떴고, 나도 모르게 손이 더 바빠졌다.

그러다 문득, 이름 없는 공방보다는 우리만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아내의 친구가 말했다. “둘째 태명이 또복이라며? 그럼 ‘또복상점’ 어때?” 사실 우리 아이 태명은 ‘또 봄’이었는데, 친구는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또복’이라는 어감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왔다. 둘째를 가진 후 복이 스르르 들어오는 느낌도 들었고, 덕분에 고민 없이 ‘또복상점’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새벽이면 작업실 불을 켜고 만들었고, 낮이면 해변으로 나가 손수 진열대를 세웠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하루하루를 팔았다. 몸은 고됐지만 이상하게도 매일이 즐거웠다. 매출도 조금씩 늘었고, 우리 형편도 점점 나아졌다.

해변은 내 직장이었고, 바다는 나의 배경이었다. 첫째와 아내는 틈틈이 놀러 와 여름을 즐겼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부드러워졌다. 친구들도 자주 들렀고, 가끔은 저녁 해 질 무렵 치킨과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람, 파도, 햇살, 웃음… 모든 게 내 곁에서 반짝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제주로 몰려들었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이곳이 그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특수’를 누렸고, 매출은 날마다 올랐다. 나는 더 일찍 일어나 더 많이 만들었고, 더 늦게까지 해변을 지켰다. 몸은 지쳐갔지만, 그래도 매일이 충만했다.

가을이 왔다. 추석이 지나고, 해가 짧아지더니, 바람이 달라졌다. 차가운 기운이 해변을 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1월 말, 플리마켓은 계절과 함께 멈췄다. 조금은 허전한 마음으로 바닷가를 정리하며,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12월. 태명이 ‘또봄’이었다가 뜻밖의 오해로 ‘또복’이 된, 사랑스러운 우리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아내와 나에게, 그리고 첫째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동생. 우리의 작은 기적이 겨울 한가운데 도착했다.

기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눈부시도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고,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견뎠다. 하지만 그해 겨울은, 이상하리만큼 추웠다. 마음 깊은 곳 어디쯤이 살짝 시린 듯한, 그런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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