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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복상점

아버지의 선물

by 나무를만지는

전화가 울렸다.
받기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받아야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수화기 너머로 누나의 울음이 터졌다.
나는 멍해졌다. 눈물이 흘렀지만, 꾹꾹 참았다.
지금은 울 수 없었다.

폭설에 막힌 하늘길을 대신해, 겨우겨우 완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하루 늦게, 아버지에게 닿았다.
정신이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세상만 무너져 내렸다.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은 요동쳤다.
벌써부터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 감정조차 삼켜야 했다.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상주였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이제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것.

아버지는 이렇게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어떻게 오랜 세월을 살아내셨을까.
나는 이제야 그 짐을 조금 짊어졌을 뿐인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마음 한편에서 죄송함이 끝없이 밀려왔다.
아버지를 떠올릴수록, 드리고 싶은 말만 쌓여갔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은, 이제 영영 닿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인 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뵈었다.
그 앞에서 결국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어머니, 아내, 외삼촌의 부축을 번갈아 받으며 겨우 걸어 나왔다.
울고 또 울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눈물을 그날 다 쏟아낸 것처럼.
그렇게 지쳐, 더는 울 수 없을 것 같은 밤이 지나갔다.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
나는 후회와 그리움의 덩어리였다.

장례를 마친 후, 나는 합천의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지은 그 집.
눈에 익은 기둥, 손때 묻은 벽, 아버지가 다듬은 나무 벤치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그 집에서 말없이 사흘을 울었다.
낮에도 울고, 새벽에도 울었다.
울면서도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우리 집 사주실 거야.”

순간 어이없고, 황당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내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안아주었다.
“우리가 찾던 그 집을, 아버지가 구해주실 거야.
원래 나 좋아하셨잖아.
아버지가 우리한테 좋은 선물 주실 거야.”

사실, 우리는 그동안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층간소음은 점점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걸음소리조차 조심스러웠고, 집이 집 같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마당이 있고 1층엔 샵과 작업실, 2층엔 거주 공간이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집은 항상 비싸거나, 금세 사라지곤 했다.

그 말이 단순한 위로라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 그 말을 들으셨던 걸까.

2개월 가까이, 나는 작업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집중하려 애썼지만, 잠깐 멈추는 순간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기댈 기둥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내 안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때 그 집, 매물로 나왔어.”

우리가 공방 오가며 늘 지나치던 그 집.
마당이 넓고, 1층에는 상가가, 2층은 주거 공간이 있는 곳.
우리가 꿈꾸던 그대로의 구조였다.

예전에 한 번 매물로 나왔을 때, 너무 비싸서 포기했던 집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절반 가까운 가격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그걸 보자마자 번호를 저장했고, 부동산에선 하루 만에 매물을 내렸다.
집주인이 마음을 계속 바꾼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부동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매매 의사가 있으니 보러 오시겠냐고 하시네요.”

우리는 집을 보러 갔다.
수없이 지나다녔던 곳인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바깥에서 보는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집이라는 것을.

관리 상태는 좋지 않았고, 구조도 독특했지만…
우린 결국, 이틀 후 매매 의사를 밝혔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망설였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날 밤, 아내에게 물었다.
“자기… 혹시 이럴 줄 알고, 그때 아버지가 집 선물 주신다고 말한 거야?”
아내는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빨리 들어주실 줄은 몰랐지.”

그날 저녁, 민이와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었다.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민아, 우리 마당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 갈 거야.”
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우와, 진짜요? 근데 아빠, 그 집은 어떻게 생긴 거예요?”

나는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가 많이 울었더니…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셨어.”

민이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바람이 부는 저녁 바닷가를 걸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이,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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