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복상점

내 꿈이 이루어지다.

by 나무를만지는

집 계약이 끝나고, 이사를 준비하던 그즈음. 윤정은 인테리어 업자와 실랑이를 벌이며 집을 예쁘게 꾸미고 있었고, 나는 마지막 플리마켓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봄이 막 지나고 여름이 문턱을 넘던 시기였다.

인테리어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여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플리마켓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원데이 클래스와 매장 운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매장을 채우며, 진짜 ‘또복상점’다운 소품샵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특수는 온데간데없어졌고, 플리마켓의 매출은 급감했다. 나는 카빙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윤정은 외부 출강이 하나둘 잡히면서 우리가 처음에 계획했던 매출 다각화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고객들은 플리마켓보다 매장이 더 낫다며, 제품에 로고를 각인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의견들을 바로 반영했다. 제품에 로고를 넣자, 고급스러움이 더해졌고, 가격도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구매 의사가 뚜렷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고생하던 때보다 훨씬 효율적인 판매가 가능해졌고,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며 판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사도 잘 마무리됐고, 매장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찬바람이 불기 전, 우리는 플리마켓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완전히 플리마켓으로부터 독립하기로 한 것이다. 리사무소의 횡포, 셀러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기이한 규칙들로부터 벗어나자,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을 우리의 방식대로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날씨나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삶이 너무나 행복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서 벗어나자, 시간도 넉넉해졌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었고,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고, 소파 위를 오르내리며, 방방마다 웃음소리를 채워갔다. 그해, 우리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고… 그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무렵,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이었냐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