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나를 살렸다 2
제주가 나를 살렸다
밤새 술을 마셨다. 친구 집에 쓰러지듯 잠들었고, 아내가 걱정할까 봐 친구는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다음 날 오후, 병원 근무를 마친 아내가 친구와 나를 불렀다. 어제 나눈 이야기들을 조용히 듣던 아내는 망설임 없이 비행기 표 두 장을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녀와. 그리고 좀 쉬어. 자기가 쉬고 살아야 나도, 아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무작정 제주로 향했다. 짐이라곤 여행가방 하나뿐. 얼마나 있을지도 정하지 않은 채, 마치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로 가면 나는 살 수 있을까?’ 기내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제발,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기를.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 했다. 마음이 무너지든, 몸이 지쳐 있든,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며칠 뒤에 연락드리겠다’뿐이었다. 친구는 먼저 대구로 돌아갔고, 나는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홀로 남았다.
기다림은 불안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끝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가 되도록 휴대폰은 조용했다. 나는 실패자였다. 체중은 불어있었고, 얼굴은 어두웠으며,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의 나를 누가 고용하고 싶었을까.
네 번째 날, 나는 바닷가로 나갔다. 회색빛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억울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바다를 원망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방에 틀어박혔다. 죄인처럼 숨어들어 이틀을 꼬박 술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일자리 구하셨나요? 대표님께서 면접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쥔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흔들리는 손끝을 다잡으며,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정말 살아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