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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나를 살렸다. 3

by 나무를만지는


전화기를 조용히 쥐고 한동안 망설였다.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말했다.
"제가 대구에 있어서 연락이 늦었습니다. 다시 제주로 가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담담했다. 대표님이 면접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묻는 것, 그리고 육지에서 내려온다면 사택을 준비해주겠다는 것.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단호하게 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틀 뒤, 나는 짐을 싸서 다시 제주로 향했다. 익숙한 듯 낯선 땅.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사택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제주 바다가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푸른빛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깊고도 너른 바다, 그 앞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재가 된 듯했다.

사택에 도착하자 지점 매니저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내가 머물 방을 안내해주고, 곧바로 근무지로 데려갔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함께 일할 직원들을 소개받았다. 부장과 과장과 간단한 면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는 함덕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일을 하면서 바다를 볼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이곳에서,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일하면 되는 곳.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내게 주어진 일은 혼자서 하면 되는 파트였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조용히 일하다가, 조용히 퇴근하면 되는 하루.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듣는 출퇴근길,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는 시간.

하지만 그 바다 앞에서, 나는 여러 번 울었다.

보고 싶은 아이가 떠올라 울었고,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죄책감에 울었다. 모든 걸 뒤로한 채 제주로 내려온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닐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올 때면 파도 소리에 기대어 조용히 울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 했다.

비록 미안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살아가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듯, 나의 감정도 끝없이 출렁였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바다가, 이 바람이, 그리고 이곳에서의 시간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그 변화가, 생각보다 더 깊고 거칠게 다가올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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