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딪불이의 약속
한 달에 여섯 번, 회사에서 주어진 휴무. 평일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이틀을 붙여 쉬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그 이틀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육지로 갔다. 아버지를 뵙고, 아이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를 만나 웃고 떠드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가혹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아빠, 나 이제 말 잘 들을 수 있는데…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 그리고 같이 살고 싶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비행기 안, 제주 집에 도착해서도. 밤이 되면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를 때렸다.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집을 나섰다.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데, 어둠 속 작은 빛들이 보였다. 반딧불이였다. 몇 마리가 돌담 위를 날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봤다. 그것도 살아있는 것들을, 내 눈앞에서.
그 신비로운 빛을 보고 있자니, 아이가 생각났다. 수술실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아내도 떠올랐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너가 필요해. 같이 있자.”
그리고 반딧불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이가 자연을 보고, 만지고, 그 속에서 자라났으면 좋겠다고.
아내는 이틀 뒤, 조용히 내게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이 살아야지. 가족이니까.”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가장으로서 내 가족을 먼저 지켜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 이주를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반딧불이가 내게 가져다준 것이 단순한 결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