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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진다.

몸과 글의 거리

by 나무를만지는



글이 안 써진다.

마음속에선 무언가 웅성대는데, 손끝은 고요하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로 엉키고, 싸우고, 밀쳐내는 기분이다.


요즘 목공일이 많아졌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톱밥과 나무향 속에서 손은 쉴 틈이 없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그만큼 마음이 늦게 따라오는 것 같다.

낮에는 일에 잊혀지고, 밤이면 말들이 흩어진다.


펜을 쥐고 앉아 있어도,

단어들은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어디쯤에서 길을 잃는다.

펜 끝에서 맴돌다 사라지기도 하고,

눈꺼풀 뒤에서만 반짝이다 이내 꺼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글의 목덜미를 너무 세게 움켜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놓아주면,

글이 먼저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오늘은 그냥 이 말만 쓰기로 한다.

글이 안 써진다.

하지만, 그 말이 지금 내 진심이니까

그걸로도 충분한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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