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by 운촌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타고난 모양이나 재능이 모두 다르듯 학습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세상을 관찰하고 스스로 깨우치며 배우는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종종 있다.

초등 검정고시반에서 처음 만났고, 초등 검정고시를 바로 합격하신 후 지금은 중등반 과학 수업에서 만나고 있는 인영 어머님이 그런 사람 중 한 분이다.


오늘 중학교 과학시간 태양계 단원 수업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인영 어머니가 질문을 하신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중학교 남학생 둘이 대화를 하는데, 탄소랑 헬륨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던데. 그게 뭐예요?”


“우와~ 탄소, 헬륨. 이런 단어가 들렸어요? 그리고 그걸 기억하신 거예요?”


“공부를 하니 안 들리던 소리가 이제 귀에 들려요. 혹시, 위험한 물질은 아닌가요?”


정말 대단하시다. 나는 천천히 탄소, 헬륨이 포함된 원자에 대해 알려드렸다. 나중에 화학 단원에서 배우겠지만 예습 차원에서 간단히 알려드렸다.

이런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나의 학습자들이 궁금한 것이 생기고 중학교 수준의 지식만 알려드려도 그분들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세상의 여러 현상과 연결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아! 그게 그것 때문이구나!’


이렇게 어르신들이 설명을 들으며 신기해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을 때 나는 또 신이 나서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몸에 관해 설명할 때 완전 열심히 들으신다. 평생 살아오며 겪었을 나의 몸, 몸속에 있는 여러 장기들, 심장, 간, 위, 이자, 눈, 귀, 뇌.......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소화되어 똥이 되는지,

오줌은 어디서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심장은 왜 계속 뛰는지,

늙으면 왜 돋보기를 써야 하는지,

이석증이란 무엇인지,

......

어르신들이 이젠 모두 연세가 있으시니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병원엘 자주 다니신다.

크게는 암수술을 하신 분부터 허리 수술, 백내장 수술은 기본이고, 여러 이유로 의사를 만난다. 진료를 받으며 의사의 설명을 듣게 되는데 이제까지는 안 들렸다. 알아듣질 못해 답답했다.


우리 몸속에 저렇게 많은 기관들이 신비롭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배우며 매우 좋아하신다. 난 또 왕년에 생명과학 교사였으니 얼마나 신나게 가르치겠는가? 내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제스처로 설명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수능 시험공부를 위해 하는 공부랑은 다르다. 내신 1등급을 위해 하는 공부랑은 정말 다르다.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우리 눈의 시각세포가 감지할 수 있는 전자기파는 400~700nm 가시광선 범위이다. 그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이나 X선 같은 범위의 전자기파는 감지하지 못한다. 반대로 적외선 이상의 파장도 우리 눈은 감지하지 못한다. 세상에 있지만 안 보이는 것이다. 같은 풍광 속의 꽃을 바라보아도 내가 보는 것, 곤충이 보는 것, 뱀이 보는 것은 모두 다르게 보인다. 자외선을 감지하는 곤충이나 적외선을 감지하는 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풍광과 다르리라. 누가 보는 것이 진짜인가?


청각세포도 그렇다. 우리 귀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20~20000Hz 범위의 진동수다. 이 가청범위를 벗어나는 소리는 있으나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너무 낮은 소리도 너무 높은 소리도 우리 귀는 듣지 못한다. 하지만 초음파를 듣는 박쥐나 고래같은 동물은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로 사물의 위치를 감지하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예전에 이런 웃긴 일도 있었다.

틴 벨~ teen bell~

청소년들에게는 들리고 어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핸드폰 벨소리.

수업 시간에 핸드폰 벨이 울리면 수업을 방해한다는 죄목(?)으로 벌점을 부과하던 시절에 학생들이 찾아낸 묘책이었던가?

실제로 학생들이 들려줬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었다.


그러니 우리는

보이는 것(가시광선)만 보고

들리는 것(가청범위)만 듣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배움을 통해서 우리 은하계 너머에도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는 엄청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DNA로부터 단백질이 합성되어 생명이 유지되고 있음도 알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해서 중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도 좋지만, 어머님들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넓어진다면 좋겠다.


나의 학생들이 이제까지도 정말 잘 살아오셨지만

공부를 하며

좀 더 많이 들리고

좀 더 많이 보이는

당신들을 둘러싼 세상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