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취미 삼은 외곽 법인 개척 영업

by 그루터기


지식인 3급에서 2급으로 레벨업을 목표로 응모한 작품 겸 추후 모대학원 위탁교육의 일환으로 개설된 금융리더과정에서 내가 제출한 과제의 테마이다. 내가 대전지점에서 가장 역량을 집중하여 공을 들인 부문이다.

나는 대전지점 부임 초기엔 영동, 금산, 논산, 옥천 등 소재 법인만 담당을 했다. 대전지점은 우리 회사 내의 다른 점포 대비 법인고객 비중이 높아 제2의 법인부라 불렸다. 그래서 내부고객 전담관리 책임자 이외는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시내든 외곽이든 법인고객의 관리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시내 법인은 주로 부장이 맡았다. 주요 고객 실적평가 시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단순 외형의 증감이 주요 항목에 포함되다 보니 평가 기초 수탁고가 모든 직원에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추후 이탈 내지 수탁고 감소가 예정되어 있거나 그 확률이 높아 보이는 시내 법인들을 정 부장은 나에게 인심 쓰는척하며 떠 넘겼다. 나는 본래 정 부장의 이러한 꼼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바로 위 선임 책임자인 송 과장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점포 내 돌아가는 분위기로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드디어 지점장은 나를 호출했다. 전임 송 과장이 담당하던 법인고객을 누가 인계받을 것인가가 급한 현안이 될 것이 뻔했다.


정 부장은 애시당초 본인은 여러 가지 핑계를 들어 인수를 꺼리고 이번 건도 나에게 떠넘기려는 의도가 역력했다.지점장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나는 희망퇴직한 송 과장이 맡고 있던 관리법인을 내가 맡겠다고 먼저나섰다.


그래서 ‘열심히’를 넘어 ‘잘’ 해보겠노라고 사족을 전혀 붙이지 않고 출제자의 의도대로 명확히 뜻을 전달했다. 어차피 여러 정황상 나에게 돌아올게 불을 보듯 뻔했다. 자진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모양도 좋을 듯했다.


단 내가 원거리 출장 영업 중일 경우 다른 지역에 일거리가 터질 경우에는 표 대리 등 다른 책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최 과장, 그리 많은 법인고객을 기존 고객의 단순관리를 넘어 신규 개척까지 해낼 수 있냐고 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라며 주저 없이 깔끔한 답변을 했다. 지점장은 매우 흡족해했다. 이렇게 하여 지점장과 정 부장 모두를 만족시키는 업무분장 확정이라는 선물을 건넸다.


당시 토요일도 출근을 하는 6일 근무제 시절이었다. 나와 표대리는 오전 8시 30분이 되면 점포 내에서 자취를 감출 것을 지점장은 주문을 했다. 1주일인 6일 중 4~5일은 외부 영업을 "빡세게" 이어갔다.


업무용 차량은 하루 전에 미리 말하면 다른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배차해 주겠노라고 했다. 배차가 여의치 않은 날은 나와 표대리의 차량을 교대로 운행하기로 했다. 당시 사정상 본인이 직접 운전이 어려운 성 부장을 어느 정도 우선 배려해야 함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성 부장이 업무용 차량을 원할 경우마다 정 부장은 본인도 업무용 차량을 쓰겠노라고 딴지를 자주 걸었다.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하루 평균 운행거리는 250~ 350 킬로미터에 육박했다. 영업용 택시 운행을 방불케 했다. 하루에 8개 내지 12개의 법인을 드나들었다.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쌩초보 운전자인 나는 정말 겁이 없었다. 당시 내비게이션도 없어 묻고 물어 또는 지도책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 많은 법인들의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거렸다.


희망퇴직한 후 모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송 과장과 영업 일선에서 건곤일척의 일전을 불사했다. 기존 법인 이탈 방지는 기본이고 추가 자금 유치와 신규 고객 개척을 해야 하는 나는 더욱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새로이 수익증권 판매채널로 지정된 증권회사 대비 수익률에서 결코 경쟁력이 없는 당사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촉 회수를 늘려갈 수밖에 없었다. 직접 방문, TM, FAX를 통한 자료 전송, 배포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나는 당점에 부임하며 생애 최초로 휴대폰을 장만했다. 지점장은 부임 여비를 1박 2일로 산정하여 주었다. 법인영업에 꼭 필요하다며 휴대폰의 구입을 독려했다.


삐삐와 공중전화로는 영업의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건 누구나 동의했다. 당시 휴대폰의 크기나 무게로 볼 때 원시인의 돌도끼 수준이었다. 나는 1개월 만에 3번이나 휴대폰을 분실하는 진기록을 세우고 그중 두 번은 회수를 했다. PC 기능은 전혀 없는 단순한 이동전화기임은 물론이었다.


나는 영업전략을 세우는데 기존 충성고객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는 이른바 MGM을 최우선 했다. 하루에 두세 개 섹터를 묶어 방문하는걸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미거래 원거리 법인만을 하루 종일 드나들다 보면 실적이 나오지 않을 경우엔 힘이 빠지고 영업에 대한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기존 거래처와 섞어서 방문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기존 거래처 실무책임자를 통해 인근 거래처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기존 거래처와 신뢰를 쌓다 보면 진정성 있는 소개가 되고 신규 개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였다.


거래처의 키맨(실세)이 누 군인가를 먼저 알아내는 건 상당히 중요했다. 자금운용에 대한 결정권은 일반적으로 금고ㆍ신협의 경우 실무책임자가 쥐고 있지만 때론 이사장이 직접 챙기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당시 당사의 점포 수는 40개 내외에 불과했다. 지방 거점 대도시 이외의 군 단위엔 판매채널이 없었다. 따라서 방문 위주의 외곽 법인 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청 소재지 점포에서 영업을 나왔노라며 책임자의 명함을 건네면 일단 우호적이었고 공신력 면에서 제법 후한 대접을 받았다.


나는 금산지역 신규법인 개척 및 기존 법인 거래규모 증대에 적지 않은 실적을 올렸다. 당시 대전 관내 점포는 도합 3개였다. 내가 대전 지점을 떠날 때 다른 두 개 점포를 이임 인사차 들렀다. 지점장을 비롯하여 선임부장부터 찾았다. 모지점 선임부장은 옥천 법인영업의 명맥을 이어 주어 고맙다는 덕담을 건넸다. 또 다른 부장은 신규 개척도 제법 했고 금산 지역은 아예 석권했다는 분에 넘는 칭찬을 했다.


규모로 전국에서도 손 꼽히는 상징성 있는 곳이었다. 논산 소재 놀뫼 금고의 이사장과 당돌하게 단독 상담을 하여 자금 5억을 유치했다. 신규법인을 개척하는데 "이사장님께 제가 직접 전화를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돌직구 스타일 영업도 구사했다. 이곳의 부이사장은 상대방의 말은 경청하여 희망을 갖게 하지만 자금운용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권은 없다고 했다. 이에 이사장과 직접 담판을 하여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추후 이임 인사차 옥천 신협을 방문한 나에게 실무책임자는 부임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떠나느냐고 물어왔다. 맞벌이 주말부부라고 하자 그럼 어서 가라고 했다. 본인도 나와 유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전지점에서 인천지역으로 전보발령이 있기 직전 논산 소재 연무대 금고로부터 무려 11억의 신규자금의 유치에 성공했다. 잘 나갈 때 떠나라는 말에 딱 맞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외곽 법인 영업활동의 휘날레였다.


현 지점에서 나는 여러 가지 영업 역량을 갈고닦는 행운을 얻었다. 법인 영업의 경험과 노하우가 그 핵심이었고 운전실력 배양은 덤이었다. 이후 다른 점포에서 겪게 되는 법인영업은 ‘식은 죽 먹기’나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붙었다.


업무용 차량이 아닌 자신의 개인 차량을 업무용으로 운행 시 유류대를 보전키 위해 ‘차람 운행일지’란 걸 비치하고 책임자별로 운행기록을 남겼다. 연비를 따져서 정산을 해주었다. 행선지 주행거리 차량 소유주 등을 기록했다.


기존 법인고객 관리와 달리 신규법인 개척 시 엔 일반적으로 2인 1팀으로 움직인다. 나는 정 부장과 시내 법인을 내 차량으로 다녀왔다. 정 부장은 자신의 차량을 운행한 것으로 일지에 기록을 올렸다. 이중으로 기재한 것이 추후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직속 상사라도 눈을 감아줄 수는 없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갑자기 서먹해졌다. 정 부장은 이미 이른바 ‘전국구’로 소문난 인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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