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걸치기와 정체성

by 그루터기

“부장님, 혹시**병원에 아시는 분 없나요? 아버님이 입원이 잘 되질 않네요.”

“그래, 내가 알아보겠네. 대학 동문 주소록을 뒤적이면 될 것 같네. 그러려고 지금 사무실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참 내가 여러 개의 단톡방이 있는데 그쪽에서 수배해 보고 금방 연락을 주겠네.”


“성 부장, 강선배가 그 병원의 원무부장과 연락이 되었다네.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네. ”

같은 점포에 근무 중인 대학 후배 성 부장의 아버지는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대형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받았다. 원하는 ** 병원에 입원이 여의치 않아 나에게 급히 부탁을 했다. 금요일 밤이었다.


“부장님, 대단하십니다. 평소 발이 너른 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후배는 평소 크고 작은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


“저는 우리 학과 모임 외엔 잘 나가지 않습니다. 부장님은 법대 출신은 물론 의대 출신도 같은 동문으로 생각하나 보네요?”

“야 이 사람아 그럼 전공에 불구하고 같은 대학을 나왔으면 당연히 동문인지, 참 이상한 말도 다 하네?”


나는 때론 후배의 허리춤을 움켜쥐고선 대학 관련 모임에 동행시키기도 했다.

“신부장님, 좀 전 후배의 일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도통 연락이 없네요?”

고객과 술자리를 같이 하고 있음에도 나는 경과를 알아보고 선배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주어야 했다. 신세 진 사람에게 경과를 알려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후배는 평소 자신에게 걸려오는 전화에 즉각적인 응대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 경우에도 ‘예 신부장님’이 아니라 ‘여보세요’로 말문을 열었다. 전화 매너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이에 관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즉시 몇 차례 정색을 하고 지적을 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본인이 급한 용무나 절박한 사연이 있는 경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상대방을 기를 쓰고 찾아 나서는 경우와 너무나도 균형이 맞지 않았다.


“부장님, 제가 그저 ** 병원에 입원이 가능한가 여부만 알고자 했지, 그 정도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의 집사람도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나는 물론 박선배가 어떤 대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도움을 받으면 될 일이지, 기껏해야 그런 말 밖에 할 수 없나? 너무 실망이 크네.”

그제야 후배는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였다.


내가 오랜 기간 몸 담았던 곳은 금융기관이었다. 지금은 전자결재 시스템이 정착되었고

웬만한 것은 서명으로도 결재

가 가능하다. 이와 달리 20여 년 전까지도 영업점에선 대부분 결재인을 사용했다. 아주 많은 양이 생산되는 입출금 전표를 비롯하여 제 장표류 등의 결재 란에 실인 등록부에 등재된 각자의 결재인을 날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해당 건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겼을 경우 누구의 결재인이 날인되었는 가로 일단 책임 여부가 갈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지점에 근무 시 선임 여직원은 자신의 결재인을 날인하는데 독특한 방식을 고집했다. 자신의 결재인에 인주를 충분히 묻혀 확실하게 날인해야 함에도 어중간한 상태로 날인했다. 이에 때론 누구의 결재인 인지 구분도 어려웠다.

초임 책임자인 나는 이런 형태의 날인을 하는 부하 직원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이럴 경우 나는 이 직원을 불러 세워 또렷하게 다시 날인을 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판단으로 날인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당히 지는 깔끔한 직원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잘 못 되었으면 나중에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된다. 만약을 대비해서 변명을 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마련하는 사람은 가까이하기가 싫었다. 나중에 자신의 결정이 잘못으로 결말이 나더라도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당당히 나서는 사람이 바람직한 금융인이라는 나의 소신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인간상은 꼭 금융기관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성 후배의 처신에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 한 때는 이리저리 부리나케 사람을 찾아 나서고 평소엔 인맥 구축에 소홀히 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았다.


후배는 자신의 아버지가 ** 병원에 입원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사정이 좀 바뀌어 입원이 가능해지니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의 신세를 졌다는 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처신을 했다.


“그저 입원이 가능한가를 알아보려고 했다.”는 황당한 태도로 돌변을 했다. 비겁했다.

세상엔 공짜 점심은 없다. 평소 인맥 구축에 소홀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정말 커다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 때 회자되었던 '경계인'이니

'회색인'이런 부류의 사람은

내가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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