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짱 도루묵

by 그루터기


최근 나는 혼자서 고향으로 귀촌했다. 이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약 32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한 곳의 금융기관에서 정년퇴직으로 마감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여행이라도 다니는 것이 제격일 듯했다. 그러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내 보금자리 인근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임대하여 자격시험 준비와 글쓰기를 병행했다. 그런데 이것도 계속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약 1개월 전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 시골집에 새로이 닻을 내렸다.


귀촌을 결정한 데는 나름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다. 길고 긴 도회지 생활을 접고 산 좋고 물 맑으며 인심 좋은 고향에서 다시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자격시험 준비와 글쓰기를 약 1년 정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자 한다. 이제 구직급여도 바닥이 드러났다. 이 작은 사무실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줄여보자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사무실 유지비용, 매식 비용, 주차비, 교제비 등을 대폭 줄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기대도 한 몫했다.


계산기의 신세를 질 필요는 없었다, 암산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매월 지출되는 고정비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임대료(35), 종이 신문 구독료(6), 매식 비용(30), 교제비, 대리운전비 합계(40) 등등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이 중 임대료와 주차비는 모두 절약할 수 있는 항목이라는 판단을 했다. 게다가 시골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선 직접 밥을 지어먹으면 매식대는 대폭 줄어들 것이고 사람을 만날 때 드는 교제비 등도 반 이상 절약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도합 얼추 60만 원 정도는 절약이 가능할 듯했다. 그런데 그것은 엄청난 오판이었다. 세상 일이란 것이 머릿속의 단순 계산만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내가 근무하던 직장에선 만 35세부터 매년 종합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여러 검진 기관 중 직원이 원하는 곳을 택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복지 혜택 중 눈에 띄는 항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약 3년 전부터 신체의 두 군데 부위 추척 관찰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국립 S대 병원을 직접 방문하여 이 두 군데 부위를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다.


정기 종합검진은 물론 두 개 부위 정밀검진 시즌이 오면 나는 매번 잔뜩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엔 각 부위의 기능이 정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느냐가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부위인가를 가리지 않고 ‘악성이냐 아니야 “가 관건이 되었다. 연식이 쌓이다 보니 모두 임상 참고치 중 정상에서 우상향 하는 것이 눈에 띄게 읽힌다. 정밀검진 결과를 확인하는 당일의 두려움과 염려에 따른 스트레스를 언제까지 감당해야 할지 참으로 부담스럽다.


나의 직전 보금자리인 인천과 고향에서 각각 병원까지 승용차를 이용 시 주행거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편도 기준으로 약 200여 킬로미터나 된다. 인천 집에서 병원을 오갈 때 차량 운행에 따른 유류대는 아예 머릿속에도 없었다. 통행료도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향에서 이 병원을 오가는 지금은 형편이 아주 달라졌다. 게다가 하나의 문제가 더 있었다. 정밀검사 후 약 1주일 후에 그 결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반드시 대면 진료가 필요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였다.


”예, 모양이 나쁘지 않습니다. 크기도 그대로고요. 왼쪽은 칼슘이 좀 있는데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작년 말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최근 귀촌을 했습니다. 검진 결과를 보러 매번 멀리서 이렇게 직접 와야 하나요?”

“어디로 가셨어요? ~~ 예 그러면 이제 2년 후에 또 바로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겨우 2분 내외의 이런 진단 결과를 들으러 230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달려와야 했다. 참으로 시간과 비용의 대가가 너무나 컸다.


이것이 아직도 막혀 있는 전반적인 ‘원격진료제도’ 도입의 문제이다. 원격진료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관해선 논란이 있다. 의료 기기 관련 업체만 배 불리는 일이라거나 오히려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 가속화된다는 반대 주장도 있지만 결국은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들 한다. 거창하게 이론적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병원에 들러 결과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이번 나와 같은 경우엔 전화, 이메일, 팩스, 문자, 톡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보인다.


이래서 이번에 내가 기를 쓰고 비용을 절약하고자 했던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사무실 임대료, 정기 주차료, 신문구독료 등 1개월 상당분은 이번 두 번에 걸친 병원 방문으로 한방에 모두 날아갔다. 이번 달엔 이사비, 기타 부대 비용을 감안하면 두 달치 임대료가 넘게 한 번에 사라졌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간 불균형이니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완화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도 서울이나 광역시 이상의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하여 전원생활을 이어가기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연식이 늘수록 더 자주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이번 달엔 인터넷과 팩스 유선 TV 등 월 정기 비용과 설치비 등을 따지면 절약은커녕 전 달 보다 더욱 많은 지출이 있었다. 다음 달엔 현역 시절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정기 건강 검진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도 검진기관을 왕복해야 한다. 사무실 임대료 등의 절약은 언제나 가능할지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수도권 서울 빅 5 병원으로 쏠림 현상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KTX 광명역과 분당 S대 병원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고속철의 등장으로 전국이 너끈히 1일 생활권에 들어섰다. 나는 이번에 2분 진료 면담을 위해 자로 잰 듯이 정확히 보름치의 사무실 임대료를 날렸다. 비용 절약을 하고자 하는 거창한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었다. 검진 결과 이상이 없어 수술, 처치, 투약 등 별도의 조치가 필요 없는 경우 즉 간단한 결과의 고지는 전화, 이멜, 팩스, 문자, 톡 등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정기 종합검진일이 또 다가온다. 앞으로 또 몇 달분의 임대료를 길바닥에 뿌려야 하나 짐작이 어렵다. 결국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추가로 정기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것이 현 상황에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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