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 천작 오, 이진 십, 삼일 삼십 일 삼진 십.”초등생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정된 특별활동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4학년엔 글짓기반이었고 이후 5~6학년 2년은 주산반에 지원했다. 군내 초등학교 각 부문별 대표 선수가 모여 읍내에서 겨루는 ‘예능경시대회’란 것이 있었다. 나도 주산 부문에 학교 대표로 출전을 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실제 실물 주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훈련 이외에 ‘암산’이라는 항목도 있었다. 이때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다음 머릿속에다 실제 주판을 그렸다. 그러지 않고 8+7=15, 7+5=12, 9+6=15 이런 계산방식으론 감당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린 주판을 실제 왼손으로 잡아 움직이지 않게 잘 고정한 다음 오른손가락 여러 개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주판을 놓듯이 하여야 겨우 불러주는 출제자의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래서 나는 머릿속에 주판을 항상 그리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중학교 진학 이후엔 나는 숫자를 다루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공부 부문으로 내달렸다. 이래서 때론 아주 기본적인 암산 실력 유지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암산을 할 때 대응하는 방식은 그대로 살려 계속 활용했다. “야! 그 문제는 너 혼자만 맞았어? 그걸 어떻게 맞았어?”“이번 국가고시 1차 시험에 헌법은 A 수, 형법은 B 수가 들어갔더구먼. 그 두 교수의 문제가 눈에 띄었어.”나는 일찍이 두 교수의 강의에 몰입했다. 일거수일투족까지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듯이 담았다. 이른바 카메라로 스냅 자신을 부지런히 찍어댔다. 그러니 당시 강의 상황이 통째로 머릿속에 화석처럼 저장이 된 것이었다. 그 문제를 푸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대학 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날밤을 지새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른바 ‘백야’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술을 마시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니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기준으로 온전히 잠시라도 잠을 전혀 이루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밤을 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대학 시절엔 이 백야를 100일 이상 충분히 체험했다. 주로 중간고사와 기말시험을 준비하느라 이 백야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날밤을 지새운 날은 역사에 기록될 만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불리는 이 단기전의 시험엔 ‘백야 공부’는 상당한 효험이 있었다. 한편 주산반에서 암산을 할 때 갈고닦았던 스냅 사진사의 역량을 여러 군데 응용하여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먼저 예상문제를 적중시키는 요령이 부쩍 늘었다. 열강을 이어가는 교수가 평소 강조하는 부문, 논점이 많은 곳,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곳 등에 집중하여 몰입하면 예상문제의 적중률은 월등하게 레벨업 되었다.교수가 입 밖으로 내는 강의 내용은 기본이고 억양, 톤, 얼굴 표정, 손짓, 발짓 등 몸놀림을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머릿속의 주판’처럼 빼곡히 저장되었다. “기태는 1학년 16번, 2학년 12번, 3학년인 지금은 7번이지?”중학생 시절이었다. 모든 친구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선생님이었다. 우리 학교는 한 클래스 60명 내외에 한 학년이 두 개 반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대단한 암기력이다. 사람의 지능지수를 기계로 정확히 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암기력(기억력)이 지능지수의 전부는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해, 암기, 추리, 응용력 등 모두의 집합체가 지능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지금도 주위로부터 ‘별 쓸데없는 것을 너무나 소상히 오래 잘 기억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청구를 자주 듣고 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쓸데없는 것만 공부하고 기억한다.’는 대학 절친의 논리에 ‘그것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온다’로 나는 늘 맞선다. 지금도 그런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수업이든 대학 시절 강의든 가르치는 사람의 모든 움직임에 몰입하는 것이 공부하는 가장 첫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스냅사진을 찍는 작업의 연속이다. 수업에 몰입하는 나는 한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늘 째려본다’고 지적을 당한 적도 있었다. 몰입하는 것을 보고 그랬나 보다. 수업 시간이나 강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일대일 대화, 삼삼오오 미팅, 친목 모임마다 나는 긴장을 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금융기관 근무 시절 우리에게 밥벌이를 만들어주는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만의 오랜 보물덩어리인 중고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연속해서 찍어냈다. 이 과정이 고객과의 상담 시 가장 효율적인 나만의 요령이자 노하우였다. 고객의 움직임 속에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나 포트폴리오의 정답이 모두 다 들어 있었다. 금융상품이나 포트폴리오 이외 고객의 가족관계 등 신상, 세상 사는 이야기 등을 소환해 내면 손님은 항상 반색을 했다. 고객은 직원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고 항상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주었다.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불러내는 데는 ‘스냅사진 전용 카메라’ 이상의 좋은 툴이 따로 없다. 시나 소설 등 문학의 출발점은 ‘비유’라고들 한다. 이에 고객과의 상담 시 적절한 비유를 동원하면 고객은 쉽게 이해를 했다. ‘너무나 쉽게 설명을 잘해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다. 내 머릿속엔 엄청난 양의 스냅사진이 쌓여 있다. 이러다 보니 “조심해야겠다. 소름이 돋는다.”라는 농을 던지는 동료나 후배 직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용 연수에 제한이 없는 나만의 ‘스냅사진 전용 손때 묻은 중고 카메라’를 머릿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닌다. 원로 시인 신경림의 ‘고장 난 사진기’가 아니다.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몽땅 찍어 애니메이션으로 업그레이드하여 활용하고 다닌다.“이일 천작 오, 이진 십, 삼일 삼십 일 삼진 십.”초등생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정된 특별활동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4학년엔 글짓기반이었고 이후 5~6학년 2년은 주산반에 지원했다. 군내 초등학교 각 부문별 대표 선수가 모여 읍내에서 겨루는 ‘예능경시대회’란 것이 있었다. 나도 주산 부문에 학교 대표로 출전을 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실제 실물 주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훈련 이외에 ‘암산’이라는 항목도 있었다. 이때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다음 머릿속에다 실제 주판을 그렸다. 그러지 않고 8+7=15, 7+5=12, 9+6=15 이런 계산방식으론 감당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린 주판을 실제 왼손으로 잡아 움직이지 않게 잘 고정한 다음 오른손가락 여러 개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주판을 놓듯이 하여야 겨우 불러주는 출제자의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래서 나는 머릿속에 주판을 항상 그리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중학교 진학 이후엔 나는 숫자를 다루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공부 부문으로 내달렸다. 이래서 때론 아주 기본적인 암산 실력 유지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암산을 할 때 대응하는 방식은 그대로 살려 계속 활용했다. “야! 그 문제는 너 혼자만 맞았어? 그걸 어떻게 맞았어?”“이번 국가고시 1차 시험에 헌법은 A 수, 형법은 B 수가 들어갔더구먼. 그 두 교수의 문제가 눈에 띄었어.”나는 일찍이 두 교수의 강의에 몰입했다. 일거수일투족까지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듯이 담았다. 이른바 카메라로 스냅 자신을 부지런히 찍어댔다. 그러니 당시 강의 상황이 통째로 머릿속에 화석처럼 저장이 된 것이었다. 그 문제를 푸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대학 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날밤을 지새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른바 ‘백야’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술을 마시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니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기준으로 온전히 잠시라도 잠을 전혀 이루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밤을 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대학 시절엔 이 백야를 100일 이상 충분히 체험했다. 주로 중간고사와 기말시험을 준비하느라 이 백야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날밤을 지새운 날은 역사에 기록될 만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불리는 이 단기전의 시험엔 ‘백야 공부’는 상당한 효험이 있었다. 한편 주산반에서 암산을 할 때 갈고닦았던 스냅 사진사의 역량을 여러 군데 응용하여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먼저 예상문제를 적중시키는 요령이 부쩍 늘었다. 열강을 이어가는 교수가 평소 강조하는 부문, 논점이 많은 곳,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곳 등에 집중하여 몰입하면 예상문제의 적중률은 월등하게 레벨업 되었다.교수가 입 밖으로 내는 강의 내용은 기본이고 억양, 톤, 얼굴 표정, 손짓, 발짓 등 몸놀림을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머릿속의 주판’처럼 빼곡히 저장되었다. “기태는 1학년 16번, 2학년 12번, 3학년인 지금은 7번이지?”중학생 시절이었다. 모든 친구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선생님이었다. 우리 학교는 한 클래스 60명 내외에 한 학년이 두 개 반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대단한 암기력이다. 사람의 지능지수를 기계로 정확히 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암기력(기억력)이 지능지수의 전부는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해, 암기, 추리, 응용력 등 모두의 집합체가 지능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지금도 주위로부터 ‘별 쓸데없는 것을 너무나 소상히 오래 잘 기억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청구를 자주 듣고 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쓸데없는 것만 공부하고 기억한다.’는 대학 절친의 논리에 ‘그것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온다’로 나는 늘 맞선다. 지금도 그런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수업이든 대학 시절 강의든 가르치는 사람의 모든 움직임에 몰입하는 것이 공부하는 가장 첫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스냅사진을 찍는 작업의 연속이다. 수업에 몰입하는 나는 한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늘 째려본다’고 지적을 당한 적도 있었다. 몰입하는 것을 보고 그랬나 보다. 수업 시간이나 강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일대일 대화, 삼삼오오 미팅, 친목 모임마다 나는 긴장을 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금융기관 근무 시절 우리에게 밥벌이를 만들어주는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만의 오랜 보물덩어리인 중고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연속해서 찍어냈다. 이 과정이 고객과의 상담 시 가장 효율적인 나만의 요령이자 노하우였다. 고객의 움직임 속에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나 포트폴리오의 정답이 모두 다 들어 있었다. 금융상품이나 포트폴리오 이외 고객의 가족관계 등 신상, 세상 사는 이야기 등을 소환해 내면 손님은 항상 반색을 했다. 고객은 직원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고 항상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주었다.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불러내는 데는 ‘스냅사진 전용 카메라’ 이상의 좋은 툴이 따로 없다. 시나 소설 등 문학의 출발점은 ‘비유’라고들 한다. 이에 고객과의 상담 시 적절한 비유를 동원하면 고객은 쉽게 이해를 했다. ‘너무나 쉽게 설명을 잘해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다. 내 머릿속엔 엄청난 양의 스냅사진이 쌓여 있다. 이러다 보니 “조심해야겠다. 소름이 돋는다.”라는 농을 던지는 동료나 후배 직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용 연수에 제한이 없는 나만의 ‘스냅사진 전용 손때 묻은 중고 카메라’를 머릿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닌다. 원로 시인 신경림의 ‘고장 난 사진기’가 아니다.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몽땅 찍어 애니메이션으로 업그레이드하여 활용하고 다닌다.
“이일 천작 오, 이진 십, 삼일 삼십 일 삼진 십.”
초등생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정된 특별활동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4학년엔 글짓기반이었고 이후 5~6학년 2년은 주산반에 지원했다. 군내 초등학교 각 부문별 대표 선수가 모여 읍내에서 겨루는 ‘예능경시대회’란 것이 있었다. 나도 주산 부문에 학교 대표로 출전을 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실제 실물 주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훈련 이외에 ‘암산’이라는 항목도 있었다. 이때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다음 머릿속에다 실제 주판을 그렸다. 그러지 않고 8+7=15, 7+5=12, 9+6=15 이런 계산방식으론 감당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린 주판을 실제 왼손으로 잡아 움직이지 않게 잘 고정한 다음 오른손가락 여러 개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주판을 놓듯이 하여야 겨우 불러주는 출제자의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래서 나는 머릿속에 주판을 항상 그리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중학교 진학 이후엔 나는 숫자를 다루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공부 부문으로 내달렸다. 이래서 때론 아주 기본적인 암산 실력 유지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암산을 할 때 대응하는 방식은 그대로 살려 계속 활용했다.
“야! 그 문제는 너 혼자만 맞았어? 그걸 어떻게 맞았어?”
“이번 국가고시 1차 시험에 헌법은 A 수, 형법은 B 수가 들어갔더구먼. 그 두 교수의 문제가 눈에 띄었어.”
나는 일찍이 두 교수의 강의에 몰입했다. 일거수일투족까지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듯이 담았다. 이른바 카메라로 스냅 자신을 부지런히 찍어댔다. 그러니 당시 강의 상황이 통째로 머릿속에 화석처럼 저장이 된 것이었다. 그 문제를 푸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대학 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날밤을 지새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른바 ‘백야’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술을 마시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니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기준으로 온전히 잠시라도 잠을 전혀 이루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밤을 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대학 시절엔 이 백야를 100일 이상 충분히 체험했다. 주로 중간고사와 기말시험을 준비하느라 이 백야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날밤을 지새운 날은 역사에 기록될 만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불리는 이 단기전의 시험엔 ‘백야 공부’는 상당한 효험이 있었다.
한편 주산반에서 암산을 할 때 갈고닦았던 스냅 사진사의 역량을 여러 군데 응용하여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먼저 예상문제를 적중시키는 요령이 부쩍 늘었다. 열강을 이어가는 교수가 평소 강조하는 부문, 논점이 많은 곳,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곳 등에 집중하여 몰입하면 예상문제의 적중률은 월등하게 레벨업 되었다.
교수가 입 밖으로 내는 강의 내용은 기본이고 억양, 톤, 얼굴 표정, 손짓, 발짓 등 몸놀림을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머릿속의 주판’처럼 빼곡히 저장되었다.
“기태는 1학년 16번, 2학년 12번, 3학년인 지금은 7번이지?”
중학생 시절이었다. 모든 친구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선생님이었다. 우리 학교는 한 클래스 60명 내외에 한 학년이 두 개 반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대단한 암기력이다. 사람의 지능지수를 기계로 정확히 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암기력(기억력)이 지능지수의 전부는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해, 암기, 추리, 응용력 등 모두의 집합체가 지능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지금도 주위로부터 ‘별 쓸데없는 것을 너무나 소상히 오래 잘 기억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청구를 자주 듣고 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쓸데없는 것만 공부하고 기억한다.’는 대학 절친의 논리에 ‘그것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온다’로 나는 늘 맞선다. 지금도 그런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수업이든 대학 시절 강의든 가르치는 사람의 모든 움직임에 몰입하는 것이 공부하는 가장 첫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스냅사진을 찍는 작업의 연속이다. 수업에 몰입하는 나는 한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늘 째려본다’고 지적을 당한 적도 있었다. 몰입하는 것을 보고 그랬나 보다. 수업 시간이나 강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일대일 대화, 삼삼오오 미팅, 친목 모임마다 나는 긴장을 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금융기관 근무 시절 우리에게 밥벌이를 만들어주는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만의 오랜 보물덩어리인 중고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연속해서 찍어냈다. 이 과정이 고객과의 상담 시 가장 효율적인 나만의 요령이자 노하우였다. 고객의 움직임 속에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나 포트폴리오의 정답이 모두 다 들어 있었다. 금융상품이나 포트폴리오 이외 고객의 가족관계 등 신상, 세상 사는 이야기 등을 소환해 내면 손님은 항상 반색을 했다. 고객은 직원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고 항상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주었다.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불러내는 데는 ‘스냅사진 전용 카메라’ 이상의 좋은 툴이 따로 없다.
시나 소설 등 문학의 출발점은 ‘비유’라고들 한다. 이에 고객과의 상담 시 적절한 비유를 동원하면 고객은 쉽게 이해를 했다. ‘너무나 쉽게 설명을 잘해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다. 내 머릿속엔 엄청난 양의 스냅사진이 쌓여 있다. 이러다 보니 “조심해야겠다. 소름이 돋는다.”라는 농을 던지는 동료나 후배 직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용 연수에 제한이 없는 나만의 ‘스냅사진 전용 손때 묻은 중고 카메라’를 머릿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닌다. 원로 시인 신경림의 ‘고장 난 사진기’가 아니다.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몽땅 찍어 애니메이션으로 업그레이드하여 활용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