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점포장 리더십(2편)

by 그루터기


지금과 달리 당시엔 영업점마다 운전기사가 딸린 업무용 차량이 있었다. 그 이후 경비 절감 차원에서 오든 금융기관은 업무용 차량을 없애고 부점장들도 자가 운행을 했다. 업무용 차량의 교체 주기는 대략 3~4년이었다. 운행 기한이 만료된 업무용 차량은 경쟁 입찰 방식으로 처분함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실제론 수의계약으로 회사 직원이나 관계자들이 인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타기관의 그것과 달리 금융기관의 차량은 주행거리가 많지 않았고 난폭이 아닌 모범 운행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중고차 시장에서 동급 차량을 구하는 것과 견줄 때 상당한 메리트가 있었다.


우리 지점도 업무용 차량을 처분해야 했다. 옥 점장은 일찍이 본인이 인수할 생각이 있음을 공공연히 떠벌였다. 강대리와 동급 책임자 민대리도 이 차량의 인수에 관심이 있었다. 최근에 늦게서야 운전면허를 취득한 강대리도 중고자동차가 필요했다. 이를 두고 권차장은 이른바 ‘1강 2 약’의 3파전 구도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업점 현직 점포장이 업무용 차량을 인수하기로 작정을 하면 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대리는 얼마 후 당해 점포를 떠나 지방의 대도시 점포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최근에 직전 점포에 근무 중인 권차장으로부터 긴급한 전갈을 받았다. 강대리도 지난번 이곳에 근무할 때 이 건에 관해 관심이 있었지 않느냐고 이제 외서 다시 물었다. 이미 옥 점장이 인수하여 운행 중인 줄로만 알았다. 아마도 차량 상태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다른 전매자를 찾았는데 아마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강대리를 배려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강대리의 집사람도 참 껄적지근하다는 말로 입장을 대신했다.


대한민국 국위를 세계만방에 널리 선양한 어느 세계 권투 챔피언처럼 정계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다. 4전 5기라는 신화처럼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우리나라 최고 군 통수권자에 옥 점장의 고교 선배가 당선되었다.


각 분야의 전산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IT강국으로 불리고 전산 자동 개표시스템이 세계 탑클라스에 오른 지금과 달랐다. 당시엔 선거 개표의 최종 결과 ㆍ당락의 윤곽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선거 익일 오전 늦은 시각이나 정오쯤 돼서야 확정이 되었다.


IMF 구제금융 신청 후 경제주권을 잃고 금융기관의 재무구조 건전성이 도마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우리 회사의 영업점도 허구한 날 이른 아침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도 영업점 소속 전 직원은 아침 일찍이 출근을 했다. 아침식사는 사무실 뒤편에 자리한 단골 설렁탕집에서 배달 온 음식으로 해결을 하기로 했다. 영업장 객장의 책상이나 탁자 등을 임시 식탁으로 활용하여 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배추김치와 깍두기 2가지 만을 반찬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런데 점장실 인근을 떠나지 못하고 TV 개표 생중계방송에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오직 2명은 다른 직원들과 확연히 달랐다. 바로 옥 점장과 권 차장이었다.


출생지가 남쪽이란 점에서 같았다. ○●민국이라 불리는 특정지역의 영웅이자 대부, 정신적 지주이자 그 모두가 되는 정치인이었다. 옥 점장의 고교 선배가 군 최고 통수권자에 당선되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너무 감격해서인지 책상에 편히 앉기는커녕 엉거주춤하게 선채로 설령탕이 담긴 뚝배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커다란 소리로 만세삼창을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이들 두 사람은 때로는 서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가끔 웃음도 나누었다. 그런데 말은 물론 웃음도 그들만의 특정지역 사투리로 주고받았다.


강대리의 선후배 사회친구 들 중엔 그쪽 출신이 제법 있었다. 케미가 아주 좋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중 ○●선생의 골수 지지자가 아닌 중도나 온건세력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의단체 중 결속력이 유난히 강한 3 곳을 꼽았다. ●●대 교우회, ●○●전우회, ○●향우회라 했다. 각 영업점에선 고객 밀착 행사의 일환으로 분기마다 1회 예산을 배정받아 고객의 날 행사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 행사일을 전국의 영업점 모두가 같은 날로 맞추어 동시에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지점도 오늘을 고객의 날 행사일로 정했다. 떡, 과자, 음료, 김밥 등을 준비함은 물론 각종 경품행사도 곁들였다. 주로 기존 거래고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조그마한 잔치였다. 그런데 옥 점장은 우리 지점과 전혀 거래가 없는 특정지역 출신을 회원으로 둔 ○●향우회 윈들을 이 행사에 초대했다. 고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깔아놓은 멍석 위에 임시 향우회라는 판을 벌였다. 그도 모자라 강대리에겐 뒤풀이 비용 지원이란 명목의 봉투까지 준비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아무리 일선 단위 부대장에 해당하는 점장이라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도를 넘는 결코 정도가 아니었다.

강대리와 범동향으로 분류되는 여직원은 ‘강대리님, 우리도 ●●향우회 한번 하는 게 어떠나’며 입을 삐죽였다. 본인이 국내 유수의 금융기관 지배인(점장) 이란 걸 ●○향우회 회원들에게 마음껏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많은 직원들은 점장의 처신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정지역 출신이란 것을 내세워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이었다.


옥 점장은 책임자 미팅 시, ‘○●투자신탁 책임자 여러분 정말 한심합니다. 이거 향후 어떻게 해 갈 겁니까’ 라를 외치다 본인의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때론 쌍소리도 섞었다.

식사 시간에도 대화를 당연히 자신이 독점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문제 되는 비말은 물론 밥풀 등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동석한 사람들은 상당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주제에 관해서 이른바 설교를 할 경우 이야기 본류에서 지류로 빠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식사를 같이 하던 책임자들은 고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옥 점장은 의외로 글씨는 수준급이고 달필이었다. 여러 색상의 필기구를 병용했다. 본인이 적은 글의 PC 작업은 주로 창구 초급 직원의 몫이었다. 강대리가 초안을 잡은 고객 대상 DM문구도 너무나 많은 부분에 자주 손을 대다 보니 이 수정 작업 또한 하나의 큰 일거리가 되었다.

때론 강대리를 개인적으로 불러 세웠다. 이런 식이면 향후 과장, 차장, 지점장 등 승진은 어림도 없다. 제발 일을 본인의 마음에 들도록 제대로 하라고 수시로 질책을 했다.


점포의 접대비 등 예산은 3급 책임자들도 감히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득이 고객 접대를 한 경우 강대리가 작성ㆍ관리하는 서무 장부(비용 노트)를 샅샅이 뒤지고 지적하며 ○●대리는 거의 지점장 수준이라며 빈정댔다. 옥 점장으로부터 사전에 비용 지출에 대한 구두 승인을 받았음에도 그건 별개의 이야기로 취급했다. 전혀 기억이 없는 것처럼 행세했다.


옥 점장은 오늘 강대리가 관리하는 거래법인의 골프 접대를 나섰다. 법인카드와 별도로 여러 개의 봉투를 추가로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예산을 지나치게 낭비(전용)했다. 영업실적으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예산 항목 간 전용의 절대 금지를 하달해 놓고선 잘 지키지 않았다. 현수막 시안이나 점포 내 부착물을 현재(before ) vs 이후(after)의 시안을 들고 비교하여 올리면 최종 결정하겠노라고 했다. 강대리는 미대 출신 특기자는 물론 디자이너는 더욱 아니었다. 이러한 무리한 요구에 맞추지 못한다며 한심하다고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었다.

이번에는 전임 점포장이 유치해 놓은 법인 장기자금 200억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현안이었다. 당시는 영업점 평가 부문에서 외형 평가 시 단순 달성률ㆍ증가율이 기준이었다. 평가 기초 외형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지점에 부담이 되지 않고 실적은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묘책이 필요했다. 급기야 대형 법인 거래처를 전담하는 조직으로 당해 자금 전액을 만기 도래 전에 이관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니 회사 내 평판이 좋을 리가 없었다.

종래부터 법인본부와의 거래관계가 있는 ○●연금에 연고가 있어 50억을 당점으로 유치했다. 입금과 이관을 같은 날 연이어 처리하는 꼼수를 자행했다. 이 또한 옥 점장에게 우호적인 결과가 돌아올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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