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점포장 리더십 (1편)

by 그루터기

지점장을 제외한 강대리의 상급 책임자는 차장으로 불리는 2명이었다. 점장은 유난히 출신 지역을 따지고 이를 기준으로 편 가르기를 잘했다. 송차장이 선임인 데다 같은 남부지역 출신이니 그쪽으로 손이 더 가는 것이 보였다. 옥 점장은 전 책임자가 모인 공식 석상에선 차장 둘 이선 서로 예우를 해야 하는 사이라고 위상을 정해주었다.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러던 차에 책임자 미팅을 마치고 점장실을 나서던 한차장이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차 디친 대리석 바닥 위로 쓰러졌다. 기다란 나무 말목이 통째로 넘어지듯 했다. 이에 모든 직원들이 기겁을 했다. 가장 놀라는 사람은 또 한 번 더 놀랍게도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옥 점장이었다. 평소 본인이 한쪽으로 기울게 처신한 것이 좀 켕겼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 지점 최장신 권 대리는 한차장에게 즉각 넉넉한 등을 들이밀었다. 쓰러진 한차장을 일단 빌딩 최상층 빈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응급처치를 했다.


옥 점장은 그동안 본인이 책임자를 비롯하여 부하직원에 평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고 혹여 그게 원인이 되어 한차장이 쓰러진 게 아닌가, 혹시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지휘 책임을 무엇보다도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런데 참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가끔 일어나 웃을 기회가 생기니 다행이었다.


이다음 한차장은 119구급차 신세를 지는 게 수순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최근 한차장은 잦은 술 지리에다 과로가 겹쳐 잠깐 균형감각을 잃었던 것으로 나중에야 밝혀졌다. 이에 옥 점장은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하 직원들은 키득댈 수밖에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렸다.


다른 회사와 만찬 가지로 우리 회사도 영업 기타 필요상 직원들의 신상은 존 안철에 철저히 보관, 관리했다. 이에 더하여 직원의 인적 네트워크를 일정한 원칙과 기준을 정하여 전산으로 관리했다. 그래서 이를 소기의 목적에 활용하는 ‘인맥시스템’이란 공식적인 제도가 있었다.


업무상 보고를 위해 오늘도 강대리는 점장과 독대를 했다.

“강대리, 내가 말이야 DD선생도 아주 잘 아는 사이인데 이번에 이 ‘인맥시스템’에 입력하는 게 어떨까?"라고 자랑스럽게 물었다.

"점장님, 대단하십니다. 부럽습니다. 당연히 입력하셔서 회사로 하여금 적절히 활용케 함이 지당해 보입니다."라고 응답을 하는 것이 모범답안으로 보였다.


강대리는 헛웃음도 애써 감추며 “그러세요? 입력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로 답안지를 내밀었다. 이에 강대리는 고득점은커녕 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모든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고 합격하는 지름길이란 걸 모르는 강대리가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말과 행동이 이어지는 캐릭터인 강대리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외자 이름을 쓰는 중견작가 ○●시인이 모친상을 당했다. 좀 기이한 행적이나 생활 등으로 잘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모친이 별세를 하면 자식으로선 당연히 본인이 상주로서 본연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럼에도 이미 예정된 사하라 사막 횡단을 핑계로 상가를 찾는 조문객들을 직접 맞이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일을 놀랍게도 피붙이도 아닌 옥 점장에게 몽땅 떠 맡겼다. 통상인의 사고와는 좀 거리가 멀었다. 옥 점장의 결혼식에 주례 선생으로 모신 인연 등 개인적인 유대관계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 상주 역할의 대행이란 더욱 남다른 일로 보였다. 문상객 명부의 일목요연한 정리를 우리 지점 창구 여직원에게 타이핑 작업을 맡기기도 했다. 3일장 기간 내내 점포장은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꽃피는 호시절이었다.


옥 점장은 상주 역할대행이란 과업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했다. 해당 시인의 시집 여나무권을 들고 보무도 당당히 옥 점장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거 ○●시인의 시집인데 누구에게 줄까, 평소 시를 즐겨 읽고 시집을 모으는 마니아인 강대리로선 딩연히 관심이 있었고 욕심이 났다. 다른 책임자들은 이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결국 저자가 아닌, 저자 모친 상주 권한대행의 친필 휘호가 적힌 ○●시인의 시집 한 권을 하사 받는 영광을 강대리는 누렸다. 사람의 이름을 韓字로 적을 경우 통상 약(속) 자를 사용하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들었다. 옥 점장은 강대리의 가운데 이름자를 거침없이 약자로 휘갈겨 적었다.


우리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영업을 하는 주식회사였다. 예산이란 이름을 빌어 영업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썼다. 광고선전비 항목 중 판촉물 구입이란 용도로 사용이 허락된 예산 세부항목이 있었다. 당사 거래 고객의 거래 심화, 또는 미거래 고객의 거래 성사를 위한 목적으로 기념품, 선물이라고도 부르는 판촉물을 제작ㆍ구입하여 적절히 활용했다.


강대리는 이쪽 업무도 맡았다. 매주 월요일 영업개시 전에 열리는 주간 책임자 미팅에선 지난주 시행사항과 이번 주 예정사항을 파트별로 리스트에 올려 회의 진행 시 자료로 활용했다. 몇 주간에 걸쳐 ‘판촉물 구입(검토)’이라는 것이 리스트에 오르자 옥 점장은 드디어 호통을 쳤다.


가격대별로 상 중 하로 나누어 후보 아이템을 책임자의 공람과 의견을 취합하여 최종 결정을 하라고 누차 지시를 받았다. 이에 강대리는 검토 대상 아이템을 교체해가며 여러 차례 책임자의 의견을 물은 후 옥 점장에게 최종 낙점을 요구했다. 그런데 오늘 미팅에서 또 난리를 치다니 강대리로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급 책임자 4명은 먼저 회의를 파하고 점장실을 나서 영업준비를 했다. 3급 이상 책임자는 그 이후 약 30분 내외의 또 한차례의 고위급 미팅을 이어갔다. 고위급 미팅을 마친 후 점장실을 나서 강대리에게 다가선 직계 상급 책임자인 한차장은 뜻 모를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 판촉물은 주방세제인 ‘천연 샘’으로 결정되었으니 그리 알고 구입ㆍ배포를 진행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강대리는 순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황당하여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천연 샘’이란 아이템은 옥 점장의 지인을 통해서 지난번 이미 한번 구입ㆍ배포한 적이 있었다. 옥 점장이 애당초 이번에도 이 아이템에 뜻이 있었다면 그렇게 여러 번에 걸친 강대리의 의견 제시에 솔직하게 ‘강 대리, 지난번 그것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좋았어. 이번에도 그것으로 하면 어떨까’라 하면 간단히 마무리되었을 것이었다. 약 1달이나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핑퐁게임 놀이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필시 강대리를 괴롭히거나 ○●훈련시키듯 한 것이었다.

어차피 이미 본부로부터 배정받은 예산이란 점포장이 적절히 본인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초급 책임자에 불과한 강대리가 이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설령 반대를 한들 이까짓 판촉물 아이템 결정권은 점장의 전속적인 권한인데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왔는지 보통인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옥 점장은 이미 통상인을 넘어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7박 8일간의 칩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