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 특이항원 수치인 PSA가 종전 대비 30%나 올라갔습니다. 조직검사를 한번 더 받아야겠습니다. 원하시면 국립 S대 병원으로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많이 양보해도 30대 후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오늘도 나에게 이른바 푸시를 했다.
나는 이미 8년 전에 국립 S대 병원에서 전립선 조직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회사의 건강 검진 결과를 들고선 사무실 인근의 개인 병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친 성과였다.
이곳 개인병원은 지긋한 연령대의 전문의 2명이 교대로 진료를 했다. 나는 전립선 비대증 부문에선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간 터였다. 2명 의사 모두 보통 사람이었다.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내 증상에 관한 결과를 침착하게 설명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냈다. 이른바 포커페이스였다. 내가 악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후 전립선 비대증 처방전을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받았다.
최근 나는 국내 유명 병원에서 치핵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후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치핵수술 자체가 잘 못 되었거나 혹시 다른 곳이 감염되었는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이곳을 찾았다. 지난번에 손에 넣은 비뇨기과 처방약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급한 조언이 절실했다. 혈액검사 결과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PSA 수치가 무려 8.5를 찍었다. 드디어 다시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즉시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지요? ”
이런 나의 다급한 질문에 전문의는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일단 2주일분의 항생제를 먹어보고 다시 혈액검사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2주 이후 검사 결과는 이전으로 복귀했다. 급성 전립선염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치가 급등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며칠 전 사무실 인근에서 점식식사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이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 건물을 헐어버리는 공사 중인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병원 빌딩을 재건축 중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곤란할 뻔했다. 그 와중에도 다행히 나는 진단서와 진뢰의뢰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여차하면 내 진료기록이 묻혀버릴 뻔했다.
이래서 사무실 건너편 비뇨기과로 옮겨다니기로 했다. 이곳의 원장은 국립 S대 병원 출신이었다. 많이 양보를 해도 40대 초중반 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이곳에서 천 번째 진료였다. 그런데 이 전문의는 드디어 ‘영업마인드’를 가동했다. 내가 매년 해오고 있는 정기검진에서 비뇨기과 부문의 검진 방식은 믿을 수 없으니 새로이 각종 검사를 하자고 했다. 얼마 전 종로 병원에서 모두 마친 적이 있는 갖가지 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초음파 검사는 기본이었고 수지검사, 요속측정, 잔뇨 검사 등을 한번 더 반복했다. 이는 분명히 공포 마케팅에 바탕을 둔 과잉진료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 박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직 현직에 있는 나로선 이 정도의 부담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젊은 박원장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주위 다른 비뇨기과를 찾기도 녹록지 않았다.
이러던 중 나는 주소지 인근 점포로 다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래서 진단서와 진뢰의뢰서 발급을 신청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나는 이 제반 서류의 비용을 면제받는 은전을 받았다. 지금까지 각종 고가의 검사항목에 내가 토를 달지 않고 응한데 대한 조그마한 선물
이었다.
국립 S대 출신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공동브랜드를 걸고 꾸려가는 프랜차이즈 회원 병원을 바로 사무실 곁에서 찾았다. 그간 별다른 문제없이
이곳 병원을 제법 오랜 기간 드나들었다. 방문 첫날이었다. 기존에 복용 중인 약과 효능은 같지만 다른 브랜드로 교체해도 되느냐는 원장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환자인 나는 을에 불과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기 건강검진 결과를 보아가면서 이곳을 오갔다. 최근엔 보다 젊은 전문의 1명을 추가로 영입했다. 원장 대학 후배였다. 이래서 2인 진료시스템이 되었다.
1호 의사가 자리를 비운 경우 2호 의사와 상담 후 처방전을 받았다. 오늘은 다시 2개월분의 처방전을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최근 검진기관의 결과를 나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전립선 특이항원 수치인 PSA가 2.2에서 2.9로 무려 30%나 점프를 했으니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권유를 했다.
내 검진과 투약 이력 각종 멘털 데이터 등이 자신의 PC에 빼곡히 저장되어 있었다. 내가 약 8년 전 종로 병원 비뇨기과에서 조직검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종래 조직검사는 12곳에서 이제 36곳으로 샘플링 부위를 늘렸다. 어느 곳에서 좋지 않은 것이 발견될지 모른다. ‘복불복’이다. 이제 조직검사를 다시 한번 해볼 타임이 되었다. 자신이 국립 S대 병원과 소통하여 조직검사를 받도록 충분히 연결해 줄 수 있다고 자랑도 했다.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방향을 결정하고 이 병원 문턱을 넘었다. 내 사무실이 자리한 14층 건물은 각종 여러 가지 과목의 병원이 한데 모여 있는 이른바 ‘병원 빌딩’이었다. 내가 이용하고 있는 대학 후배 내과 전문의에게 이미 괜찮은 비뇨기과 전문의 소개를 받아 놓았다. 같은 빌딩의 또 다른 대학 후배 비뇨기과 전문의를 추천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진단서 진료의뢰서 등을 챙겨 이곳으로 옮겨다니기로 이미 최종 결정을 한 바 있었다.
기껏해야 30대 후반 내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전문의는 이런 내 입장을 전해 듣는 순간 얼굴빛이 갑자기 변했다. 도수 높은 술을 짧은 시간에 많이 들이켠 사람처럼 홍당무가 되었다. 보다 높은 고가의 검사나 처방을 권하여 좀 더 많은 보험급여를 챙기고자 한 자신의 속내를 들켜버려 린 것이었다. 이른바 공포 마케팅을
동원한 영업마인드를 숨기지 못하고 나에게
내비친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어리
숙한 장기 단골 환자(고객)를 한 명 잃게되
었다.
이 젊은 전문의는 환자인 나를 얕본 것이 분명
했다. 나 정도의 연령에다 사회생활 경력을감안
하면 주위에 다른 비뇨기과 전문의를 소개받을
수 있는 인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너무무시
했다.
무릇 의사의 본분은 환자의 질병치료와 건강의 유지, 증진에 있음은 누구가 동의한다. 그런데
이보다는 자신의 수입을 늘리고자 하는 ”영업 마인드“를 더 앞세운 결과였다.
내가 새로이 찾은 병원은 좀 달랐다. 이미 내과 전문의의 소개도 받았고 대학 후배 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전의 의사의 대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제 초음파 검사도 1년에 한 번은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고 큰 부담이 없는 비용입니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아가며 중간중간 필요시 혈액 검사도 병행하시지요?”
최근 초음파 검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즉시 원장의 권유에 응했다.
“암의 예후는 없습니다”
이 심 원장의 상담에 나는 비교적 안심이 되었다. 최근 다시 병원을 들렀다. 조만간 고향으로 귀촌할 예정임을 알렸다. 평소 2개월분이 아닌 3개월분의 처방전을 들고 병원문을 나섰다.
1997년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일반 국민의 경제나 금융상식 등은 이른바 퀀텀점프를 했다. 의료분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각종 매스컴에선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게다가 인터넷의 출현과 모바일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따라 건강과 의료 관련 지식도 괄목하게 대중화되었다. 이럼에도 아직도 많은 의사들은 이를 간과하고 의사의 본분보다 “영업마인드”를 앞세운다.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레벨 업된 국민들의 의료나 건강 관련 상식 수준을 미처 눈여겨보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걸맞은 상담이나 진료를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의사의 본분과 영업마인드는 어쩌면 출발부터 상충하는 관계에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생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영업마인드 보다 의사의 본본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보이면 전문가가 아닌 환자는 아주 무리가 없는 한 의사의 권유나 결정에 기꺼이 응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영업마인드 보다 본래의 직분에 충실해야 마땅하다. 영업마인드를 먼저 내세우는 행태를 적정 수준으로 자제하다 보면 환자에게 오히려 신뢰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바로 눈앞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을 찾은 환자가 몰려들 것이다. 좀 더 멀리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의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