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선 직원들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매년 일정한 수준의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략 만 30세까지는 일반검진을 35세까지는 격년으로 종합검진, 그 이후엔 매년 종합검진을 받았다. 임단협에서 노사합의로 검사 항목이나 단가를 차츰 늘려가고 있어 직원들의 질병 예방, 조기발견, 치료 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현금으로 건강검진비를 지급하는 것보다는 검진을 강제하는 것이 그 실효성 볼 때 직원들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고용노동부에도 그 검진 결과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30대 시절 나의 건강검진 결과지는 학생 시절 전혀 공부는 하지 않고 땡땡이만 치는 학생의 주관식 답안지처럼 백지에 가까웠다.
"검진 결과는 이상이 없으며 음주나 흡연을 삼가고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운동을 권합니다"가 거의 전부였다. 이 무미건조한 채점 결과를 너무 믿은 나머지 나는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았다. 회식 자리 등에서 음주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것도 모자랐다.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 만주 일대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듯이 사명감을 갖고 술자리 활성화에 압도적인 기여를 했다. 요즘 회자되는 논문 제1저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어느덧 불혹에 들어선 나는 매년 점검이라는 시험을 치렀다. 그동안 많이 보고 듣고 하여 견문이 넓어지고 틈틈이 책을 읽는 등 공부를 좀 한 덕분인지 제법 내용이 있는 답안지와 채점 결과를 받아 들었다. 과락을 넘어 국가 공인시험의 합격선을 넘어서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수치로 표시되는 검진 결과를 탑재한 차량은 정확히 본인의 차선 정중앙으로 주행하다 가끔 타인의 차선을 침범하기도 했다. 주로 오른쪽으로 살짝 넘어가는 경우도 흔치 않게 일어났다.
지천명 초반에 이른 나는 검진 시험 관리위원회로부터 드디어 내신성적이 상위권에 진입했으니 그 비결을 발표할 기회를 주겠다는 호출을 받았다. 회사 내 연수 프로그램 강사로 초빙된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수강생들에게 본인의 혈압이 얼마인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변을 했다. 그런데 본인 혈압도 모르고 있느냐는 핀잔을 받기는커녕 나를 포함하여 자신 있게 답변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혈압이 정상일 것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결코 작은 아이러니가 아니었다. 80/120 이 정상혈압의 기준이란 걸 그 이후 가까스로 알았다. 나는 그 과목에선 항상 이 기본점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 고향에선 각각의 작은 부락마다 주특기 과목 때문에 ‘싸움’ ‘담배 실력’ ‘술 실력’ ‘거드름 실력’ 등이 그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국가와 인종을 넘어 통용되는 것 중 하나가 아마 ‘건강 자랑’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누구나 소멸될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의 건강은 어치피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점을 너무나 간과했다.
검진위원회는 호출된 나의 약진에 가까운 성적 향상이 실제 내 실력에 의한 것인지 재시험을 요구했다. 그런데 내가 받아 든 100/140이라는 점수가 결코 부정한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성적 향상이 약진 수준이니 부상을 받을 거냐고 물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공간도 여유가 없고 성적의 상승추세를 감안하면 향후로도 수상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양할까도 했다. 하지만 검진 위원회의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기로 했다. 그 이후 혈압약은 나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내가 너무 열공을 한 탓인지 진보상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수상 기회가 찾아왔다. 교양과목 진보상과 달리 이번에는 남학생들로 수강이 제한된 특별상을 받을 기회가 온 것이었다. 팔자에 없는 상복이 터졌다.
우리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늦가을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검진 답안지를 받아 들었는데 기본 공통 과목에서는 약간의 성적 향상밖에 없어서 포상권과 멀었다. 하지만 머슴아 필수 과목에서 괄목한만한 향상이 있었다.
전립선 특이항원(PSA)의 기준 점수가 0 ~ 4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5.3이라는 발군의 점수를 받았다. 비뇨기과 추가 검진을 권유받았다.
이를 전해 들은 회사 선배는 "이 친구야 자신의 몸을 아껴야지, 빨리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병원으로 가서 정확한 진단과 처방 또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태평한가" 라며 호통에 가까운 조언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그제야 부랴부랴 비뇨기과를 찾았다. 해당 수치가 높은 이유는 전립선 비대증, 염증, 암 중 하나일 것이라 했다.
사무실 인근 비뇨기과의 진단서(소견서)와 진료의뢰서를 손에 쥔 나는 국립 S대 병원 외래를 찾았다. 갖은 검사란 검사를 모두 받았다. 환자가 의사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3분 내외에 불과했다. 궁금한 점에 관한 환자의 질문 기회는 아예 차단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병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전립선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파악하는 수지검사, 초음파 검사, 소변의 속도를 측정하는 요속검사, 볼일을 본 후 방광에 소변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측정하는 잔뇨 검사 등을 모두 마쳤다.
그 이후 다시 실시한 혈액검사에서 정상범위인 3.5 수준으로 수치가 다운되었다. 그럼에도 담당교수는 이것도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라는 불길한 멘트를 이어갔다.
전립선과 관련된 체크 리스트를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는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통 수면 중 잠에 깨어나 볼일을 몇 번이나 해결하는지, 볼일을 마친 후에도 시원하지 않은 잔뇨감이 어느 정도인지, 중간에 소변 줄기가 끊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등이 그 골자였다. 영악하게도 이미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출제자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해 병원 측에 건넸다.
나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추정되는 병명과 관련된 의학지식을 알아내기 위해 검색을 샅샅이 하는 사람들과 달랐다. 세세하게 파고드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 거리가 멀었다. 그 대신 이번엔 절친 치과의사를 통하여 비뇨기과 전문의를 소개받아 조언을 받는 걸로 모자라는 것을 채웠다.
이런 경우 고교나 대학을 좀 더 그레이드가 있는 곳을 나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치 건너 두치라고 전문 과목마다 아는 교수가 있었으면 한결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이번에도 했다. 소개받은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그나마 시간의 제약을 덜 받고 궁금한 점을 좀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최근 이 사태의 줄거리를 전해 들은 전문의는 당연히 좋지 않은 쪽으로 어느 정도 결과를 예단했다. 그 병원의 내 주치의가 누구인가도 물었다. 아마 로봇 수술을 받을 것 같고 다른 부위로 전이될 경우 나타나는 증상 등에 관해 나름 조언을 했다.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 다리가 후들거렸다. 더구나 전문의는 ‘지금 별게 다 상상이 되지요?’라고 덧붙였다. 이런 너무 거침없는 안내는 나에게는 염장을 지르는 것으로 들렸다.
고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은 "삐약이"에 불과했다. 이에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작은 볼일을 보는 횟수를 체킹 하던 중에도 화장실 문자나 표시 엠블럼을 보면 갑자기 볼일을 보고 싶어졌다. 소변을 오랜 시간 참은 후에 이루어지는 요속 측정 시에도 제대로 된 실력 발휘가 어려웠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길목이었다. 출퇴근 시 차량의 히터를 켰다. 그러자 양쪽 무릎이 몹시 시렸다.‘아 이거 벌써 진도가 많이 나갔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물이나 맥주 등을 많이 마신 경우 등을 제외하고 작은 볼일은 하루 기준 8회가 정상 기준치였다. 야간에 잠을 자는 동안 화장실행은 아예 한 번도 없는 것이 베스트이지만 한번 정도는 그런대로 보아줄만하고 그 이상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작은 상식도 덤으로 얻었다.
성장을 마친 성인 남자가 그 이후에도 꾸준히 사이즈가 커질 수 있는 유일한 장기가 전립선이었다. 이 것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경우 요로를 압박하여 소변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중간에 소변 줄기가 자주 끊기도 하고 때로는 요실금도 발생할 수 있다. 이 것이 심하게 진행되면 방광염, 요로폐색 까지 갈 수 있다. 성인 남자의 경우 연령대와 전체 인구에서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공교롭게도 동행한다 했다. 50대 50% 60/60, 70/70이며 이 또한 노화현상의 일종이라고 했다.
관련 검사를 완료한 후 담당 교수는 주치의에게 자 이즈음에서 결론을 내리자고 했다. “좋지 않을 확률이 20%로 보입니다. 조직검사로 갑시다’라고 최종 결정을 했다.
내가 대학 3학년이던 여름 아버지는 대전 소재 모 대학병원에서 전립선 비대증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받았다. 당시 아버지의 연령과 현재 나의 나이가 정확히 일치했다. 우연이라고 그저 넘기기에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환자들의 쏠림현상이 심한 병원 중의 한 곳이라서 절차를 스피디하게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크리스마스이브로 조직 검사일이 잡혔다.
나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딸자식을 갖지 못한 아쉬움을 덜기라도 하듯 둘째 아이가 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와 큰 아
들 이렇게 셋이서 하는 말의 총량이 둘째 아들의 그것에 항상 미치지 못했다. 큰 아들에게는 이번 아버지의 병원 정밀검진에 관해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이와 달리 엄마 아빠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콘도를 얻어 1박 2일간 여행을 다녀올 것이니 형하고 잘 놀면서 기다리라고 둘째 아들을 달랬다.
입원일 당일 저녁에도 둘째 아들은 엄마한테 저녁식사는 맛있는 무엇으로 했으며 콘도 시설은 좋은가 등을 물었다. 애교반 아양반을 떨었다.
이윽고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술실, 처치실 등의 음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포르말린 냄새가 널리 퍼졌다. 날카로운 바늘, 핀셋, 가위, 나이프 등 금속성 도구를 쟁반 위에 내렸다 올렸다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나의 전립선 조직 채취는 마무리되었다.
검사 결과는 해를 넘겨 1월 초에 외래진료실에서 확인하기로 되어 있었다. 집사람도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나는 전직 직장동료에게 병원까지 동행을 부탁해 놓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날 저녁식사는 밥맛이 없다며 끼니를 거를 작정을 했다. 벌써 이를 눈치챈 큰 아들이 나의 상체를 들어 식탁 의자 위로 끌어올렸다.‘아빠, 조금이라도 드셔야지요’ 하는 바람에 나는 밥을 먹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래도 장남이라고 역할을 하는구나, 한편 기특했다.
드디어 대망(?)의 발표일이 밝았다. 외래진료실에서 나는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며 안절부절했다. 이후 간호사의 호출을 받은 나는 담당 교수와 대면했다. 순간 교수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육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검사 결과는 깨끗합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다른 곳에 가서는 종로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세요. 향후로는 저희들 종로 병원에 오지 마세요.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교수는 일사천리로 결과를 나에게 전달했다.
이른바 빅 5 병원 중 대형 사립병원에 비해 비록 경제적 보상면에서는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자신은 종로 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라는 자부심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검진 결과를 한꺼번에 다 듣고 난 나는 경황이 없었다. 그저 간단한 감사 인사를 뒤로 하고 화장실로 직행하여 본격적인 실력 발휘를 했다.
나의 애마 하얀색 아반떼의 히터 스위치를 ON으로 하면 처음에는 찬바람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릎이 시렸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의 독백이 뒤따랐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그럴 리가 있나?"
이래서 나는 또 전립선 비대증 치료약을 평생 새로운 동지로 추가하는 부상을 받았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초동 대처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현직을 떠난 이후에도 정기 건강검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