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옹고집은 어떻게 다른가.

by 그루터기

“만장하신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런데 절대 기대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기말고사가 코앞이라서 이렇게 강의실을 가득 메웠나 본데 어디 떡 한 조각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기말시험과 관련된 예상 문제나 힌트 등을 받으러 모였다면 이는 커다란 오판입니다. 평소 강의 시간에 잘 출석을 하지 않던 여러분이 어떤 바람을 갖고 오늘은 이렇게 왕림했는지 모르나 여러분께 나누어 드릴 떡은 단 한 조각도 없어 유감입니다.”

최근 모교 총장 자리에 오른 노동법 담당 민 교수의 일갈이었다.


민 교수는 평소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강의는 물론 평가시험, 기타 학사 일정 등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오늘은 노동법 개론 기말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명색이 총장이 되다 보니 다른 교수 대비 한 단계 높은 예우를 받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르는 경우, 다른 교수들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교 혼자서 들어오게 하거나 아니면 담당 교수가 조교를 1명 대동하는 경우가 대세였다. 그런데 오늘 민 교수는 조교 1명과 민법 교수까지 대동하고 등장했다. 민 교수에 관해선 선배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 그 ‘악명’에 관해 익히 들어 우리는 이미 세뇌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민 교수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교과서는 물론 모든 책은 책상 위에서 치우세요. 법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세요. 방금 받은 시험용 답안지를 이렇게 세로로 드세요. 그다음 몇 줄이 되든지 세로로 반을 접으세요. 여기까지 됐나요? 그럼 이어 시험지를 처음처럼 다 시 펼친 후 이번에는 아래 부분만을 방금과 같은 요령으로 반을 접으세요. 다 됐지요? 자, 이제 시험 문제를 받아 적으세요.

큰 문제 1번,’ 노사의 실질적 평등’, 작은 문제 1번, ‘근로기준법의 적용범위’, 작은 문제 2번, ‘평균임금의 정의’입니다. 모두 다 적었지요? 자 그럼 이 범위 내에서 압축하여 잘 적으세요. 단 시험용지 뒷면으로 넘어가면 채점하지 않고 “0점” 처리하겠습니다. 시험용지는 추가로 배포하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실제로 닥치니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 공인 사법시험 2차 고사장에서도 시험장 배포용 법전 참조를 허용한다. 그런데 특정 대학교의 학부 평가시험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에 이런 민 교수의 독특한 방침을 철회해달라고 감히 나서는 학생은 없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평가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었다. 과목 담당교수의 스타일에 따라 답안지 작성요령 등이 다름은 물론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교수들은 답안지 작성의 분량에 관한 제약이 없었다. 모 과목 교수는 120분의 시험 시간을 주고 주로 케이스 문제의 출제를 선호했다. 사용할 수 있는 시험용지의 분량에도 제약이 없었다. 자신의 역량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유독 민 교수만이 답안 용지의 앞면에만 적을 것을 요구했다.


답안지의 양을 많이 적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핵심 논점이나, 용어 등을 압축하고 요약해서 답안지를 작성한다는 것이 오히려 훨씬 어려운 작업이란 것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다.


민 교수는 일찍이 ‘민총 통’이니 ‘독일병정’등 많은 닉네임을 자랑했다. 게다가 최근엔 총장 자리에 오르다 보니 답안지의 작성 요령이나 법전의 참조 요구 등에 관해 아무도 다른 의견을 내거나 질문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카리스마”라 하는가 보았다. 잠시 후 민 교수는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민법 교수와 조교 둘이서 시험장을 지켰다. 장내의 공기가 월등하게 부드럽게 변했다. 그러나 민 교수가 요구하는 답안지 작성 요령 골격은 전혀 바뀔 여지가 없었다.


“민호 엄마, 나 이번 노동 고시에 합겼했어. 잘했지? 축하해줄 거지?” 나의 절친 우성이는 이미 재학 중에 결혼을 했다. 이번 민 교수가 게시판에 단숨에 내건 노동법 재시험 대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이 엄청난 사실을 부인에게 긴급하게 알렸다.


우리 모교의 공식적인 학점관리 시스템은 물론 따로 있었다. A, B, C학점은 그대로 성적으로 인정되었다. D학점은 임의 재시험이라 해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그대로 D학점으로 확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재시험의 기회를 살려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E학점은 필수 재시험이고, F학점은 재시험 불가에다 재수강이었다.


이런 공식적인 룰을 아예 무시하고 민 교수는 노동법 개론 시험을 치른 후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공식 학점 체계에는 전혀 없는 ‘민 교수만의 필수 재시험’ 제도를 만들어 냈고 이를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모교 본관의 건축 양식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미도 있었다. 미술 책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 로마의 파르테논 신전을 방불케 했다. 법대생들은 이 건물 4층에서 강의를 받았다. 법대 강의동 4층 게시판의 ‘재시험 명단의 방’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을 우리는 노동 고시 합격(통과)이라 불렸다.

나도 아주 우수한 성적은 아니나 무난하게 이 노동 고시라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이었으나 이를 같이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 모교 법대 커리큘럼엔 법철학이나 법학 교육의 기본 인프라가 되는 과목도 물론 올라 있었다. 그러나 실정법의 해석론을 공부하는 것이 학부 과정의 대부분이었다. 이런 경우 실정법의 조문이나 주요 시행령 등은 법전의 도움 없이 답안지에 옮길 만큼 숙지하고 암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이러다 보니 민 교수의 독특한 평가 방법이 본인의 옹고집만의 소산은 아니었다. 거기엔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기말시험을 치른 노동법 개론 각자의 학점이 확정된 후 민 교수는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자산의 채점 기준 등을 공개했다. 주요 핵심 법률용어 등을 아주 정확하게 적지 못한 경우 무려 한 건당 5점이나 가차 없이 감점을 했다. 법조문이나 법률용어 등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암기하는 것을 요구했다. 실정법 해석론을 주로 공부하는 법대 학부생에게는 이 것이 공부하는 기본자세라는 의미였다.

이즈음 과연 소신과 옹고집이란 것은 어떻게 다른 지가 궁금해졌다. 소신이란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이고, 옹고집이란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른다.


이에 관한 명쾌한 개념과 차이점을 자신 있게 내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결과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로 판단하기도 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한 경우는 소신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옹고집이라고 한다. 아니면 보통 사람의 건전한 상식에 반하는 가의 여부가 그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특정한 집단 내에서 이 양자의 구분을 다수결로 결정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학문의 세계에선 오늘의 외롭고 빛나는 소수설이 장차 다수설을 넘어 통설이 되기도 한다. 민주국가는 다수결 원칙을 도입한다. 오늘의 소수가 다수에 승복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소수 의견이 향후 다수의견으로 바뀔 가능성이 그 근저에 있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엔 옹고집인데 나중에 성과가 좋게 나올 경우엔 그 사람, 참으로 소신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국가나 사회 규범, 일정한 조직의 자치법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태는 일반적으로 소신의 범주에 속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옹고집으로 불릴 가능성도 있다. 양자는 질적인 차이일까, 아니면 다과의 문제인 양적 차이인지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는 현인은 없다.


무릇 우리 인간은 소신과 옹고집의 양 쪽 극단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 교수는 평소 ROTC(학군단 간부 후보생 과정)에 관해 평소 우호적이지 않았다. 특히 법대생이 이곳에 지원하는 것을 못 마땅해하였다. 모교 총 동문회장 아들이 법대 재학 중 이 후보생 과정에 지원했다. 우리 모교는 학부 졸업 시 다른 학교와 달리 학사 논문을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에 졸업 구술고사 제도를 채택하였다.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되어야 했다. 그런데 민 교수는 총 동문회장 아들에게 졸업 구술고사에서 낙제점을 주어 제 때에 학부를 졸업하지 못하는 커다란 불상사가 생겼다. 이리하여 이 학생은 장교 임관에 실패하고 일반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는 재앙이 일어났다.


이 민 교수의 결정이 소신인지 아니면 옹고집인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곡리 300번지 초등생 시절(4편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