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외 선생님
“마리수를 세어라,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월말고사 영어 시험을 치르던 중이었다. 부정행
위 없이 정정당당히 시험을 치르라는 타이름이
었다.
체격은 건조체에 가까웠다. 운동 신경이 아주 뛰
떠난 우리 1년 선배에게 ‘와직근’이란 아주 적합
한 별칭도 하사했다. 국어 선생님답게 풍부한 어
휘력과 응용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에라체(우유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 냈다. 낱말 공부할 경우엔 ‘괄호 열고 영어단어 넣고 괄호 닫
고’란 독특한 교수법도 개발했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한자는 몰라도 영어를 모르면 유식하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심지어 과자 포장지에 적힌 상표에도 반드시 영어가 자리를
차지한다고 했다. 먼 미래까지 내다보았다. 잠자
기 전에 머리맡에 꼭 영어사전을 비치할 것을 권
장했다. 외국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나라마다 고유한 표현이 있기 때문에 번역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예로 그 유명한 조
지훈의 시 승무 중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를 인용했다. 이런 시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대
로 번역할 재주가 없는 것이라 했다.
우리 중학교 동기들은 나름 사정이 있었다. 그래
서 중2가 아닌 3학년이 되어서야 1년 후배와 같
이 경주와 울산 등으로 수학여행을 동행했다. 당
시 장마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많은 비가 내려
다.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동네인 충청북도 내륙
에 살던 학생들의 큰 기대를 저버렸다. 시뻘건 흙탕물로 바다와 처음 상견례에 그치는 아쉬움
이 있었다. 동해 바다의 푸르고 맑은 물이 아닌 흙탕물로 바다의 첫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불국사 인근을 관광하던 차에 같은 곳으로 수학
여행을 온 여학생들을 가리켰다. 대한민국 명
문 이화 여고생이라 일렀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
만 나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우리나라 말에는 엄연히 두음법칙이란 것이 있
다. 성씨 중 어느 본은 ‘버들류’ 자를 쓰지만 인명
이라 이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다 했다. 류*숙이
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류’로 적고 읽는다 했
다.
평소 형광등이라 놀림을 받는 나도 충분히 눈 채
챌 수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제자들의 육감을 너
무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다. 일방적이고 노골
적으로 어느 분을 향한 계산되고 작정한 우호적
인 언급이었다. 전교생은 물론 우리 군민들 모두
가 대부분 다 알고 남았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
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희곡은 기승전결로 구성되고 갈등을 해소 내지
해결하는 과정이 있다. 특히 대단원이라는 개념
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소설에서 먹구름이 몰
려와 천둥 번개가 어쩌고 하는 것을 ‘복선’이라고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점수에는 당장 크게 도
움이 덜 되더라도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독해력을 키웠는데 꼭 필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초등생 저학년 시절 겨울방학이었다. 길고 긴
밤을 이웃집 선배 집에 있는 이백 여권의 만화
책을 탈취하여 즐겨 읽었다. 초등학교 1학년 겨
울 독특한 방학숙제가 주어졌다. 당시는 물론 지
금도 파격적이고 창조적이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만화책 10권 읽기’란 숙제를 충실히 이행
했다. 글 쓰기 글 짓기도 아닌 책 읽기 그것도 교
과서나 참고서도 아닌 ‘만화책 읽기’였다. 지금
이 아이디어를 낸 선생님 같은 분을 미래창조
부 장관으로 모셔도 문제가 없을듯하다.
형과 누나들은 동생의 숙제를 핑계 삼아 아버지
에게 합법적이고 정정당당하게 돈을 받아냈다.
평소에 자신들이 보고 싶은 만화책을 빌어다 인
근의 고모네 집 사랑방에서 탐독했다. 나는 결국
그 대열에 끼지도 못하고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숙제는 누나와 형이 한 셈이었다. 개학 후엔 내 걱정과 달리 ‘만화책 10권 읽기’라는 숙제 검사
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런 것에다 중학교 시절 정말로 실력 있고 리
더십이 뛰어난 참외 선생님 덕분에 고교 3년
시절 현대문, 고문, 한문, 문법은 올 "수 "를 받을
수 있었다.
실제 4과목의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네 과
목에서 내가 얻은 점수를 핵사찰단 수준의 검증
을 받을 자신도 있다. 이 정도의 잡문을 쓸 수있
는 바탕이 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예전의 땅콩밭 수준에서 론 그라운드로 바뀌었
다.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좋아진 중학교 교정
에 매년 봄 커다란 행사가 있었다. 활성화된 중
학교 동문 체육대회에 참외 선생님도 기꺼이 참
석했다. 너무 멋지고 어울리는 운동복에 썬그
라스를 쓰고 나타났다.
지휘봉만 갖추었으면 한창 잘 나가는 전성기의
젊은 사단장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
이런 멋진 모습 때문에 지금 배우자인 오이 선생
님이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음은 분명했다. 참외
선생님은 ‘폼생 폼사’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성
함과 같은 지역의 특산물 이름을 따서 참외라는
별칭도 덤으로 얻었다.
■ 대포 선생님
건장하고 호남형 20 후반의 신체 건장한 강건체
선생님이었다. 사회과목을 담당했다. 훤칠한 키
에 빛나는 이마의 주인공이었다. 약주를 즐겨 ‘대
포’라는 별칭도 얻었다.
같이 어울려 다니면 대포 선생님 덕분에 늘 든든
하다고 참외 선생님이 일렀다. 웬만한 어깨들은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의 카리스
마를 자랑 했다.
수요와 공급곡선을 가르치면서 ‘SS DD’를 ‘에
수 ~에수 다시 곡선과 디이~ 디이 다시 곡선’이
라고 힘 있고 독특한 발음을 이어가며 열강을 했
다. 칠판에 백묵을 온 힘을 다하여 세게 눌러 판
서를 했다. 강조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서 우리 것
의 3배 크기 주먹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손가락
을 구부렸다. 그런 다음 그 두 번째 마디 부분을 모아 칠판을 두세 번 연속해서 세게 두드렸다.
“재준이 나와라 ~ 이놈아, 왜 그리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하나?”
나를 앞으로 불러낸 선생님은 그 무시무시한 주
먹으로 따귀를 한대 살짝 건드렸다. 너무 펀치가
강하여 조그마한 핏덩이를 입안에서 뱉었다는 전설적인 전언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따귀를 맞
은 것은 아니었다. 갓 스무 살이 넘어선 우리 친구
들이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했다. 선물로 받아 든 굴비 꾸러미와 정종 대포를 매우 흡족해했다. 선생님은 그처럼 소탈하고 호탕했다.
나는 나름 일찍이 대학 전공을 사회계열 학과를 택하기로 작정했다. 시회 과목에 우선 흥미가 있
었다. 어쩌다 월말고사 준비를 제대로 했다. 모처
럼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재준이 95점, 좋았어!”
이번 사회시험에서 얻은 점수를 일일이 공개해
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깨가 좀 으쓱했다. 소질
이나 적성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는 과목의 점수를 잘 받으려면 해당 과목 담
당 선생님을 좋아하고 코드가 맞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지난번에 이것, 배운 적이 있지요?”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니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고 답변을 우리는 합창했다.
“왜 안 배웠나? 수도 없이 배웠어요 배웠어”
그럼에도 기꺼이 다시 설명해주었다.
동학사 인근 1박 2일 동창회 모임에서 선생님은
사모님과 같이 참석했다.
‘이렇게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고 했다. 제법 세월이 흐른 지금에선 ‘선생님과 별 로큰 연식 차이가 아닌데?’라는 불경한 생각
을 한적도 있었다. 우리도 막 지천명을 넘어서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