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 선생님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의 작은 분
지에자리한 학교 중학생이었다. 나는 이른 시일
내에 꼭 가고 말리라며 늘 동경한 곳은 당연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었다. 이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최근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선생님이었
다. 재색을 두른 겸비한 장신의 20대 초반의 여
선생님이었다.
그 시절 동세대인 대비 상당한 신장을 자랑했다. ‘오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가정과목은 물론 전
공하고 거리가 한참 먼 그 어려운 음악 수업도 맡
았다.
국영수 점수가 좀 높게 나온다고 노래를 잘하는
게 절대 아닌 것은 만고 불변의 이치이다. 새로
이 노래를 가르칠 때마다 어김없이 선생님은 제
일 먼저 나를 지목했다.
“재준이, 일어나 오늘 배운 노래 좀 불러보아라.”
항상 나는 죽을 맛이었다. 주로 소리를 다스리는
타고난 천하의 음치였다. 이런 내게 노래를 주문
했지만 나는 부르지 못하겠다고 답을 했다. 어명
을 그르친 항명죄로 즉시 단죄를 했다. 제법 두께
가 되는 도툼하고 투명한 플라스틱 자를 세로로 세워 손바닥 곤장을 사정없이 마구 내리쳤다.
오늘은 ‘봄처녀’란 노래를 배웠다. 때 이닌 오디
션이 벌어졌다. 두 친구 모두 지금의 아이돌보다 훨씬 더 막강한 가창력을 자랑했다. 소재지와 소나무 동네 대표 가수로 경쟁했다. 연속해서 동점을 기록했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 탁구 경기의 ‘듀스’가 이어졌다.
이처럼 노래란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즐거워야 할 텐데 나는 모두 정반대였다. 이런
팩트를 선생님은 나중에야 인정했다. 음주는 되
는데 가무가 되지 않아 조직생활에서 보이지 않
는 상대적 불이익을 줄곧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음주 수준으로 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면 나는 아마‘상류사회’로 직행도 어렵
지 않았을 것이었다.
교단으로부터 둘째 줄에 앉은 나는 바로 앞줄
에 자리한 성식이와 노골적으로 음악 수업을 방
해했다. 노래를 제대로 배울 생각은 아예 없었
다. 순전히 수업을 방해할 목적이 전부였다. 고
음 부분에서는 저음으로, 그 반대의 경우는 정반
대로 열심히 소리를 다스렸다. 재미있어야 할 음
악시간을 순식간에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중엔
방과 후 따로 남아 선생님의 개별 현장 지도를
받는 충분한 이유가되었다.
제법 너른 강당 한 모퉁이에서 나는 선생님과
영광스러운 독대를 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이 있다. 행동거
지에 모범을 보여라.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
야지 나중에 그나마 괜찮은 놈이 될 수 있다”
고 일렀다. 도덕 선생님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이런 큰 가르침을 받았다. 일생일대의 좌우명
으로 손색이 없는 비밀병기(?)를 얻는 천재일
우의 기회였다. 노래를 제 마음대로 다스려 실
기 음악점수에서 과락을 받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지적
이었다. 이게 바로 성철스님 이상의 큰 가르침
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그 실천에 있었다.
등하교길 혹은 주말 오후 오가며 선생님과 가끔
마주 쳤다.
“재준이, 음악 가르쳐줄까? 아니면 다른 무어...
다른 것도?”
절대적으로 숫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그럴 때마
다 나는 늘 부끄러웠다.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님
의 그 깊은 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중3 시절 여름 야간 자습 시간이 개설되었다.
선생님들이 교대로 감독을 맡았다. 그런데 감
독이 전부가 아니었다. 당번이 아닌 선생님이
당번인 다른 선생님보다 오히려 거의 매일 출
근했다. 참외 선생님과 영어 어휘력 겨루기로
열공 모드에 들어간 것이었다. 모기(mosqito)
라는 그 어려운 단어도 그 중 하나였다. 이는 다
른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이 생님도 열심
히 연마하여 가정과 음악을 넘어 영어과목 마
저 접수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작을
했다. 이러한 내 진단은 과녁에서 아주 멀리 빗
나간 화살임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노래가 아닌 필기 음악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
를 일단 보류하고 푼다는 게 답안을 한 칸씩 내
려 적었다. 그래서 나는 20점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받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 장, 단, 증 , 감음정
이런 것을 따지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10대 초
반의 어린 학생에 불과한 나는 당돌했다. ‘답이
없는 것 같음’이라 적어 넣는 호기도 부렸다,
빈칸보다는 일단 괄호를 메꾸고 싶은 충정이라 변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