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분 선생님의 우정과 사랑
드라마 제목 같지만 딱히 더 좋은 문구가 떠오를
지 않았다. 사총사 선생님이 같은 그룹(?) 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친구
들 모두 쉽게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 관계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짐작은 벌써부터 있었다.
삼총사 선생님은 일 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모교
에부임했다. 이는 최근 에라 선생님의 고증을 거
친사실이다. 부임한 동기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
다. 어쨌거나 일반 회사 조직이라 가정하더라도
그랬다. 세 선생님은 막후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인 것은 분명했다. ‘하나회’의 결
속력에 버금갔다.
중교 3학년 여름 야간 자습 시간이었다. 참외
선생님은 너무 의욕이 넘친 나머지 국어 특강
을 자청하고 나섰다. ‘자습시간에 웬 수업이냐’
며 당시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약간의 태클을
받기도 했다. 이에 에라, 대포 선생님은 즉각 엄호
성 지원사격을 했다. 물론 장차 본인을 ‘품절녀’
로 만들어 준 오이 선생님도 노골적인 응원을
했다.
참외 선생님은 ‘일화’에 관해 삽화라는 비슷한
말이 있다고 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나는 원하는 학교의 입학에
실패했다. 그래서 대전 소재 고입 전문 모학원
에서 재수생활을 이어갔다. 이 학원은 매달 정
기시험과 불시에 치르는 시험에 이른바 20번
실시하는 배치고사등이 있었다. 시험 천국이
었다. 혹시 후배들에게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
으면 하는 충정이 있었다.
에라 선생님은 친구 성식이네에서 하숙 생활
을 하던 시절이었다. 해당 시험 문제지를 주로
에라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참외, 대포
선생님 담당 과목 시험지에 관한 정보를 즉각
공유했다. 돈독한 우정을 늘 유지했다. 세 선생
님은 경어가 아닌 고향 친구 사이에서나 쓸 수
있는아주 편한 말이 오갔다. 중간중간 농담도
자주 끼어들어다. 이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
가 없는 배우자 관계이다. 참외, 오이 두 선생
님은 야간 자습 시간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
게 두고두고 감사하고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모자
랄 듯했다. 제자들이나 동료 교사들의 눈에 띄
지 않는 곳에서 밀애(?)를 즐긴 세월이 훨씬 많
았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었
다. 이 야간 자습이란 제도 덕분이었다. 이제 은
폐된 곳이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데이
트 아닌 것을 위장한 데이트’를 이어갈 수 있었
으니 그랬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참외, 오이 선생님 약혼식
에 에라 선생님을 초대했다. 현장에서 도착해
서야 알았다. 예비신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
로오이 선생님인 것이었다. 주위 친구나 동문
들 다른 선생님의 증언, 고증 전언을 모으면 더
욱더 적나라하고 재미있는 두 분의 밀애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오이 선생님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요즈음 미투
라는 것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 두 아들이 딸린
나도 밤길 걱정을 하는 일이 생기면 서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다.
■ 요런조런 일화
다음 달에 있을 대망의 중학교 입학식 전에 예
비 소집일이 다가왔다. 땅콩밭과 아주 유사한
관내 넓은 들판의 한 곳이었다. 대오를 맞추어
정렬을 했다.
우리 2년 선배였다. 결국 1회 졸업생이 된 태
섭 선배의 구령에 우리는 적지 않게 놀랐다.
변성기까지는 아직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우
리 동기들과 너무나 달랐다. 선배는 이미 그 수
준을 훨씬 넘어섰다. 아주 숙성된 목소리로 ‘일
동 열중쉬어, 전체 차렷!’에 한편 주눅이 들었
다.2년이 아니고 12년 정도 선배로 보였다. 우
리도 장차 중학교를 열심히 다니다 보면 저렇게
숙성된 남저음 목청소리로 바뀔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위론 손기정 선배의 정기를 받았는지 먼 거리
달음박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상우, 종
성 두 선배였다. 두 선배는 마라톤대회 출정을
앞두고 마당 조회대 옆에 섰다. 이번 ‘마라송’
대회에서, 오른쪽 주먹으로 엄지 척을 하며 반
박자 멈춘 뒤 이것(챔피언)을 반드시 치지 할
수 있도록 어쩌고 했다. 출정하는 제자들을 응
원하는 자리였다. 전교생의 박수를 유도했다.
초대 교장 선생님이었다.
2학년부터 우리에게 그 어려운 수학 공부를 책
임졌다. 신장은 표준이었으나 날카로운 눈매 덕
분인지 샤프했다. 게다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군용 아전 침대 세로 부분에 장착되는 옻칠이
아주 야무지게 잘된 각목을 늘 챙겼다. 수업에
방해가 돼는 행위를 하거나 일정 점수에 모자라
는 성적을 받은 친구에게는 그게 늘 몽둥이로 작
동을 했다. 공포의 야전침대 몽둥이’였다.
‘A제곱 = B제곱 + C제곱’이라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오늘은 처음 배웠다. 바로 직후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지원자를 찾았다. 이에 나는 손
을 번쩍 들고 교단으로 나섰다. 칠판에 열심히
판서를 해가며 증명을 마쳤다. 내게 무어 수학
적인 두뇌가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선
생님이 가르칠 때 쓰는 용어 동작 표정 등을 스
펀지처럼 빨아들이거나스냅사진을 찍듯이 통
으로암기하여 재현한 것에 불과했다.
역시 2학년 때였다. 영어 과목을 담당했다. 다
른 학교와 달리 교감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
럼에도수업 현장에 직접 나서는 열정을 보였다.
월말고사 등 시험 문제는 ‘영어 단어의 뜻을 한
글로 적는 문제 50문항과 그 정반대 문항 50개’
이런 심플한 스타일로 출제를 했다.
What time do you get up in the morni
ng?를 ‘윗 타임 두우 게덥 인 더 머닝?’이라 발
음했다. 우리는 영어 시간에 독일어도 같이 배우
는 행운을 누렸다. 질문에 응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동기에게는 성인 남자 가운데 손가
락의 두배 굵기나무 작대기를 동원했다. 아주
매우 빠른 속도로 책상 위를 두들겼다. “아따,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쌀쌀하다. 시시해 죽겠어?
그 뒤엔 ‘어쩌고저쩌고’로 마무리 하여 심하
게 나무랐다.
영어 1학년 말 평균점수 85를 넘는 친구들을 불
러냈다. 에어플레인의 에어 발음부호를 적어보
라 했다. 중학교 2년 수업 전에 예비 테스트는 이
런 방식이었다. Radio를 읽을 땐 ‘레이디오’라
읽고 우리말로 옮길 때는 ‘라디오’라고 해야
한다고 여러 번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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