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동기 모임, 동창회 이야기(8편)
단골 회집 모임과 식중독 소동
나는 짧지 않은 직장생활 중 10여 년 이상 영등포 인근 점포에서 근무를 했다. 그래서 영등포 인근 음식점이나 기타 지리 등엔 손바닥 위의 손금이었고 척하면 삼천리였다. 영등포란 곳이 수도권 전철, 국철 또는 여러 가지 시외버스 노선을 종합해보면 교통의 요지였다. 이러다 보니 각종 모임 장소로 애용되었다. 우리 동기 모임도 영등포 인근에서 자주 이루어지는 이유였다. 나는 육고기보다 해산물이 상대적으로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상식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음식을 가렸다. 해산물을 취급하는 곳을 훨씬 선호하여 단골집을 이미 확보했다. 나는 본인이 재경이나 전국 동창ㆍ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동안은 물론 이후에도 모임 장소 등을 물색할 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던 중 영등포시장 로터리 인근에 새로운 음식점 개척에 나섰다.
결코 고급 일식집이나 회집이 아닌 가성비가 비교적 좋은 중저가 회집을 발굴했다. 처음 이 회집에 들어서자 이 음식점 안주인은 나를 유별나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중에 이에 대한 합당한 사연을 알게 되었다. 종래 가끔 이용하던 영등포역에서 여의도로 진행하는 대로변 우측의 도로변에 자리 잡은 여수 해물탕집을 운영하던 분 이었음이 밝혀졌다. 최근 새로이 이 회집의 안주인이 된 것이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후 나의 엄청난 단골집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이 음식점을 1주일에 두 번씩이나 찾기도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누적 방문 횟수는 도합 일백 회를 넘어섰다. 그 이후 여러 번 이 단골집의 오너가 바뀌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곳을 찾았다. 다른 회집으로 단골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곳 대비 이곳을 자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비용 대비 음식 품질이 그나마 그렇게 뒤지지 않는다는 ‘가성비’ 때문이었다. 아주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생선회를 맛볼 수 있었다.
분기에 한번 정도 갖는 동창모임도 이번엔 이곳으로 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회장단에 내가 추천한 바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24명 내외가 참석을 하는 재경 모임을 위해 2층 한편을 통으로 예약을 했다. 메뉴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오늘은 평소와 좀 다르게 생선 세꼬시를 테이블마다 1 접시 씩 추가로 올렸다. 오늘의 특별 메뉴였다. 오늘도 모임은 성황이었다. 친구들의 근황을 서로 묻고 안부를 나누며 부어라 마셔라를 여전히 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모임도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 일어났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별일 없이 사무실로 출근을 한 나는 여러 친구들로부터 전화와 톡 문자 등으로 융단폭격을 당했다. 전날 모임이 즐거웠고 음식도 맛이 있어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받을 것이란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전날 모임 음식 때문인지 어느 친구는 구토를 동반한 설사를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병원 입원으로 출근도 하지 못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전날 특별 메뉴로 오른 세꼬시가 문제의 주범이었다.
이에 해당 음식점을 모임 장소로 추천한 나로선 난감했다. 친구들에게 커다란 민폐를 끼쳤으니 우선 미안한 마음은 기본이었다. 주인 측과 협의하여 이에 따른 치료비나 약값 등을 배상받아야 함은 물론 음식 대금의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야 했다. 내가 그동안 이곳을 자주 찾고 다른 손님들도 소개하여 매출을 많이 올려주는 등 막대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안주인은 뜨뜻미지근하거나 석연치 않은 대응으로 일관했다. 참으로 큰 배신감을 느꼈다. 나와 견줄 때 이곳을 적게 찾은 친구들도 비분강개했다.
“평소엔 그런 일이 없었다. 수시로 소독을 하는 등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데도 이런 불상사가 생겨 유감이다.”
안주인은 이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약값, 치료비 부담이나 음식대의 일부 환불에 관해선 대단히 소극적인 자세를 계속 견지했다. 이에 많은 친구들은 수시로 거칠게 항의했다.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하여 영업정지 조치를 얻어 내자는 의견 제시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하였으니 보험 회사에서 해결해줄 겁니다.”
안주인은 이번에는 더욱 성의 없는 답변까지 이어갔다.
이는 피해자인 우리 친구들의 상처에 염장을 지르는 소행이었고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들어붓는 신호탄이 되었다. 결코 짧지 않은 ●○년 지기인 고향 친구들과 단골집 안주인과의 사이에 나는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펀을 들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솔로몬식 해법도 얼른 떠오르지 않아 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의 건강을 내팽개치는 일생일대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었다.
나는 친구는 물론 단골집 안주인과 수차례 접촉을 했다. 통화는 물론 회집을 직접 방문하는 등 빠른 시일 내에 쾌도난마식의 해결책을 찾고자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안주인이 보험으로 해결하면 최소한 면피야 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다음이 더 큰 문제인걸 왜 모를까. 우량 단골 고객을 놓칠 것이고 불매운동도 각오해야 하는 등 더 큰 것을 잃을 것은 뻔했다.
양쪽의 여러 가지 주장과 의견 등을 일단 모두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다음 일정한 선에서 양보와 수정안 제시 등을 유도했다. 나는 양쪽에 모두 사과의 뜻을 기본 바탕에 깔고 가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겼는지 극적으로 타협과 합의에 도달했다. 일정 한도에서 약값ㆍ치료비ㆍ입원비 등을 배상하고 음식값의 일부를 돌려받기로 한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이행도 즉시 이루어졌다. 우리 측이 주장인 관할 구청을 통한 영업정지 등의 요구는 접기로 했다.
이런 식중독 사태 이후에도 나는 이곳을 지속적으로 찾았다. 그 이후도 여전히 크고 작은 배탈 사건이 뒤를 이었다. 이 단골집의 위생관리에 좀 문제가 있었다. 오너와 간판이 모두 바뀐 지금도 나는 이곳을 자주 이용했다. 그 이후론 이와 유사한 사태는 추가로 나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