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동기 모임, 동창회 이야기(9편)

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by 그루터기


중학교와 달리 초등교의 총 동문 체육대회는 나중에 태동했다. 보통 4 ㆍ5월 중 같은 날에 열리다 보니 양쪽 행사에 모두 참석하기란 본래 불가능했다. 이에 1 ㆍ2 주 정도 시차를 두고 개최하기로 조정을 했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활근거지를 둔 친구와 달리 외지의 동기들은 두 행사에 모두 얼굴을 내밀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궁리한 끝에 4ㆍ5월엔 중학교 체육대회, 10ㆍ11월엔 초등학교 체육대회로 교통정리를 했다. 종래 일요일에 열던 전체 동문체육대회는 모두 토요일로 변경했다. 동 행사 후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은 각 기수별로 산행이나 기타 별도의 콘텐츠로 된 동기회를 따로 갖기로 정착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초ㆍ중 전체 동문 체육대회에 더하여 기수별 동기 모임도 부담 없이 모두 참석이 가능했다. 역시 고향 동문들은 지능이 좋을 뿐 아니라 지혜롭기까지 했다.

3기라는 이름으로 중교 총 동문 체육대회 등 여러 주요 행사에서 사실상 주도세력(?)으로 등장한 것과 달랐다. 초등시절 기간은 중학교의 두배 세월임에도 51기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초교 동문 체육대회가 늦게 출범한 점도 하나의 이유였다. 중학교 3기의 초교 2년 선배들은 우리 모교 중학교로 진학을 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통합 3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군내 소재 적지 않은 초등학교가 있지만 한 세기의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는 모교를 포함하여 겨우 세 곳에 불과했다. 이 한 세기를 넘는 역사를 기념하고 전통을 지랑하는 초교의 100주년 기념 체육대회가 몇 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 어마어마한 대형 행사를 앞두고 51기 선후배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만 하며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종래부터 정해진 기준에 때라 행사를 이어가면 우리 51기가 이 100주년에 해당하는 해의 체육대회의 주관 기수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농촌인 고향 관내 인구의 급격인 감소로 종래 3개나 되던 초등학교를 모교를 중심로 통폐합하여 유일한 초교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3기는 이미 20여 년 전 중학교나 관내 초교 3군데 중 어는 한 곳이라도 인연을 맺은 친구들은 모두 ‘통합’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뭉친 바가 있었다. 이도 남보다 먼저 앞을 내다보는 ‘혜안’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좌고우면 하던 초등 총동창회 집행부에선 결국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종래 기수별 역대 참가 인원 규모나 초교 총동창회에 기여도, 회원들의 면면은 물론 응집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우리 동기에게 개교 100주년 기념 체육대회 개최라는 한 세기에 한 번밖에 올 수 없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기기로 용단을 내렸다.

집행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우리 동기들로선 영광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마냥 환호할 수는 없었다.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엄청난 예산을 마련해야 했다. 게다가 참가 인력 동원도 문제였다. 물론 행사 내용과 기획이 뛰어나고 참신하고 차별화된 콘텐츠의 개발 등도 필요했다. 헤쳐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대단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었다. 문제는 모교나 고향 관내에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만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모든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의 실행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친구들 총동창회는 용철이와 학주, 재경 모임은 송섭이와 기태가 이끄는 이원 체제로 굴러가는 중이었다. 이제 2년이란 임기 만료를 곧 눈앞에 두었다. 회장단을 새로이 뽑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신도림역 인근의 한 주점에서 재경 모임을 했다. 차기 회장은 100주년 기념행사도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기존 회장단의 2년 단위 임기의 연임을 일부 회원들이 주장했다. 이에 기명식 간이 투표를 했다. 그러나 기태가 임의로 투표 결과를 뒤엎는 만행을 저질러 진섭이와 호성이가 맡는 회장단이 새로이 출범했다.

이와 별도의 또 한 꼭지의 이슈가 있었다. 100주년 행사의 준비위원회를 기존 총동창회의 회장단이 맡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국은 별도의 준비위를 발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국 단위 동창회 1박 2일 산행 모임을 김포에서 하기로 했다. 동기 2명이 동업을 하는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 모였다. 강화 인근의 마니산으로 산행을 했다. 이 자리에서 준비위원단의 회장단 결성이 마무리되었다. 평소 역량이 충분히 검증되고 동창회를 위해 열정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병수와 경식이를 각각 준비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준비위원장은 일찍이 국내 굴지의 S그룹 계열사의 본부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수도권 중소도시 인근에서 대규모 자동차 정비센터를 이끌고 있었다. 일찍이 동창회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해 온 바가 컸다. 직전 근무 직장에선 거대한 조직을 통할한 경험이 있어 리더십도 뛰어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했다. 부위원장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각종 동창회의 크고 작은 총무를 역임했다.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꾸려오다 보니 이른바 ‘국민 총무’라 불렸다. 친구 모두와 원만한 소통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어오고 있었다. 개인의 시간과 비용도 기꺼이 할애하여 동문ㆍ동기회의 산증인이자 버팀목이 된 바 있었다. 두 회원 모두 이번 커다란 일을 맡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다는 데 모든 친구들이 동의했다. 이른바 환상의 드림팀이 출범했다.

이듬해 늦은 봄 즈음 고향 비단강 물줄기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숲머리 농촌체험관 강당에 동기들이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았다. ‘낭중지추’라는 말대로 위원장의 역량은 감추려 해도 절로 드러났다. 100주년 행사의 추후 준비계획인 로드맵을 브리핑했다. 규모가 좀 되는 조직이나 직장에서나 가능한 이른바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PT를 선보였다. 친구들 모두는 다들 믿음직하다고 합창을 했다.

크고 작은 모임을 장소를 달리하여 수시로 갖고 행사 준비 진행 과정의 진도를 점검 했다. 새로이 생기는 현안에 관한 토론과 대책 수정 등 실로 지난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갔다. 드디어 대망의 개교 100주년 기념 체육대회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회장단을 비롯한 권역별 책임자는 모든 준비사항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우리 동기 참석자들을 승용차ㆍ승합차를 이용하기에 수월하도록 이미 ‘쫍매(묶어)’ 주었지만 꺼진 불도 다시 보듯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안까지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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