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동기 모임, 동창회 이야기(7편)
강원도 여행
내 친구 용수는 강원도 평창 첩첩산중에서 커다란 규모의 펜션을 운영 중이었다. 연말 송년회 등 얼굴을 맞댈 기회는 물론 톡이나 전화 연결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가족이든 친구들과 꼭 한번 다녀가라고 매일 노래를 불렀다. 이미 주위 여러 친구들은 가족 단위 피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른 단체를 소개하기도 한 적이 있는데 그리 나쁘다는 평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나는 약 2주간의 여유를 두고 고향 친구 대상으로 또 한 번 바람을 잡았다.
결코 길지 않은 모집 기간에 금세 성원에 성공했다. 15인승 차량까지 예약을 마쳤다. 수도권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목적지임에도 대전, 청주, 대구가 생활 근거지인 친구들도 호응했다.
설레는 번개 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애초 행선지와 관련하여 현직 재경 회장 선수와 논의하던 중 첫날 일정에 동해 바다 관광 코스를 끼워 넣기로 했다.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는 5대 도시에 사는 선수를 비롯한 찬우와 나로선 9월 중순의 청정한 동해 바다를 구경하는 기분은 색다를 것이라고 많은 기대를 걸었다.
바다까진 멀리 떨어진 펜션에 먼저 여장을 푼 이후 다시 동해 바다로 핸들을 돌리기엔 시간상 녹록지 않은 형편이었다. 이에 바다 쪽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강원도로 여행 목적지를 정한 김에 바다를 꼭 한번 들르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당진에서 사업을 하는 춘석이도 이 출발 예정일이 임박해서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출발 당일 아침 이른 시간에 변경된 코스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속초가 자신의 처가이니 일단 첫 행선지를 그리로 하자는 또 다른 수정 제안을 냈다. 모든 여자 동기들은 ’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마침 춘석이의 지인이 커다란 음식점을 꾸려가고 있었다. 오늘 점심 식사는 그곳에서 자신이 한턱 쏘겠다는 부담스러운 또 한 번의 추가 제안도 했다. 이에 춘석이의 호의를 고맙게 받기로 의견을 한데 모았다.
음식점은 최근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로이 리모델링하여 쾌적한 분위기였다. 간판 메인 메뉴인 돼지갈비는 모든 친구들이 최고의 평점을 줄 정도로 어디에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최상급 클래스의 명품요리였다. 춘석이는 여자 동기들에겐 선물로 포장까지 해주는 추가 서비스도 보탰다.
바비큐 요리가 만찬으로 준비되어 있으니 웬만큼들 드시라는 재경회장의 경고성 충고에 다들 나 몰라라 했다. 15명 중 3명이나 되는 친구는, 영상이나 책자 등이 아닌 현장에서 본인들의 육안으로 동해 바다를 구경하는 일은 난생처음이라 고백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에 친구들 모두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동안 생존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고 정말 팍팍한 삶이 이어졌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렵지 않은 기회도 갖지 못하다니, 같은 친구로 코끝이 찡하다 못해 울컥하기까지 했다.
우리 고향 면소재지 앞동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들기며 일행은 낙산사로 발길을 돌렸다. 기기묘묘하게 자란 나무와 깎아지른 절벽, 푸르디푸른 맑은 바닷물에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부드러운 미풍 등 흔치 않은 전망을 마음껏 즐겼다.
모두들 양팔을 힘껏 뻗고선 어릴 적 노랫말처럼 고추 먹고 제자리서 몇 번 뺑뺑 돌며 심호흡도 모자라 각자 자신 있는 노랫말도 흥얼거렸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미리 정해진 경로 없이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내키는 대로 뛰어다니듯 했다. 동해 바다의 더할 나위 없는 멋들어진 풍광에 오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일행은 또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펜션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보니 부지런히 액셀을 밟아댔다. 나의 친구 주인장 용수 부부는 우리 일행을 입구부터 반갑게 맞았다.
고향 비단강 상류 규모 대비 1/5 크기의 개울물을 앞에 두고 언덕 배기엔 여나무 동의 숙소 건물이 자리 잡았다. 친구는 대규모의 사업을 이끌고 있었다. 우리는 크기가 각각 다른 다른 3개의 방을 숙소로 배정받았다.
그런데 작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일행에게 커다란 기대를 하게 했던 바비큐 파티 만찬 대신 바비큐 구이 정식이 식탁에 올랐다. 나와 주인장 사이 의사소통에 좀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친구들은 적지 않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내게 호된 질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서로 간에 눈을 껌벅이며 자제를 하는 모습이 쉽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나로선 참으로 난처했다. 바비큐 정식을 바비큐 구이 파티로 잘못 전해 들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니 변명해도 소용이 없을듯했다. 바비큐 파티와 숙박비 등 견적서를 들여다보며 가성비가 너무나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실망이 컸다.
펜션 건물 등은 세상에 나온 지 제법 오래된 탓인지 시설이 썩 쾌적하거나 깔끔하지는 않았다. 이 또한 내가 친구들의 눈치를 한 번 더 살피는 이유였다. 내 친구 주인장은 그래도 체면치레를 한답시고 장뇌삼을 담근 커다란 술 한 병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멀리 지방에서 합류한 여자 동기는 나와 주인장이 어떤 관계인지를 다시 한번 물었다. 우리 일행이 묵는 숙소의 창을 통해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개울물은 고향 비단강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강원도 산간 지형의 탓인지 고운 모래알 대비 크고 작은 자갈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유속은 제법 빠르고 물이 흐르는 소린 웅장했다. 인근 경치에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도 동영상으로 담아 소중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한 친구의 모습도 포착됐다. 예까지 온 기회에 어항(복수)이라도 빌어 민물고기 잡이에 나서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거칠고 빠른 물살, 모래 대신 크고 작은 자갈 때문에 유리 재질의 통발은 이를 견디지 못할 것으로 보여 뜻을 접었다.
만찬 후 숙소에 한데 모여 술자리 겸 고스톱판을 벌였다. 가던 날이 장날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엔 커다란 이벤트가 있다는 걸 일행 모두는 잊지 않았다.
23세 이하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전이 그것이었다.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과 결승에서 맞붙기로 되어 있었다. 역대 전적에선 압도적인 우위지만 여러 가지 경기 외적인 변수로 항상 숙명의 라이벌전이었다. 우리 팀의 와일드카드로 출전하는, 이미 세계적인 트라이커 반열에 오른 손흥민의 병역 혜택 여부도 함께 걸려 있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었다. 전반 내내 고전을 거듭하던 우리 팀은 신예 이강인(막내형)을 교체 투입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천신만고 끝에 3대 2로 역전을 이루는 신승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우리 팀은 아시아 축구 정상에 올랐다.
골이 터질 때마다 남녀 구분 않고 서로 얼싸안고 뛰면서 하이파이브는 물론 박수와 환호가 뒤를 이었다. 이 또한 다른 고장이나 동기들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우리 동기들의 이력이나 정체성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보통 사람이 보기엔 도저히 납득이 어려웠다. 제법 연식이 되는 외간 남정네와 아낙네들이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스스럼, 그리고 질서도 없이 마구 뒤엉킨 채 통으로 껴안고 뛰어댔다. 불경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우리 고향 동기 모임의 속 알갱이이자 정체성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을 배 웅키 위해 친구 용수는 마중 시와 마찬가지로 출구 쪽에 도열을 했다. 검은색 작은 비닐봉지에 담긴 무언가를 작은 선물이라며 내게 건넸다. 우리 일행이 1박 2일간 주인장인 용수에게 그리 서운하게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 보고 ’ 엿‘을 먹으라 했다. 조수석을 차지한 나는 동기들에게 몇 조각씩 고루 나누어 주었다.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 병장의 어금니를 노리는 껌을 주의하듯 이 엿 범벅에 어금니가 따라 나올 수 있으니 부디 조심하라고 타일렀다. 아뿔싸, 이게 웬일일까, 내가 한두 조각의 엿을 입안에 털어 넣고선 제대로 맛을 음미하려던 찰나였다. 무언가 딱딱한 이물질이 씹히듯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부디 조심하라고 이르던 당사자인 내게 우려하던 사태가 내게 현실이 되었다.
치과병원에서 몇 해 전 ’ 미켈란젤로 공법‘이란 이름으로 앞니 보강 처치를 마친 부분이 점성이 강한 엿 뭉치에 떨어져 나가 뒹글 게 된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라는 질책을 모든 친구들이 입을 모아 내게 외치는 듯했다. 웃을 거리를 일부러 만들어낸 듯한 재미있는 또 하나의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