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스펀지(2편 완)

by 그루터기

교감 선생님의 특강을 들은 이후 나는 어린 시절의 강한 감수성을 부문별로 유지하고 살려나가자는 것이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 초ㆍ중ㆍ고 학창 시절은 물론 그 이후 수업ㆍ강의ㆍ특강 시간마다 기르치는 사람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단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른바 ’ 스펀지‘가 되길 자처했다.

가르치는 자의 언어는 물론 얼굴 표정 기타 몸짓 등 모든 제스처에 오감을 집중ㆍ몰입하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모든 세세한 내용까지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자의 입장에서 임팩트가 있는 논점(부분), 가르치는 자의 핵심 메시지 등을 확실하게 포착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았다. 이리하여 순간순간을 찍어내는 ’ 스냅사진‘으로 머릿속에 잔상이 남았다. 나는 일찍이 이른바 ’ 스냅사진 전문 사진작가‘로 데뷔를 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주위로부터 별의별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상세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주위의 이러한 평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주눅이 들거나 언짢아 하기는커녕 그런 캐릭터를 갖게 된 것에 관해, 어느 저명한 시인의 말처럼, ‘결코 후회하지 않으련다’로 대꾸에 갈음하기를 즐겼다. 어린이로부터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이제 중장년도 훌쩍 넘어섰다, 지금은 사물이나 현상 등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차츰 쌓인 것은 물론이다. 큰 몸통과 그 밖의 가지나 줄기 등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단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머릿속에 통으로 집어넣은 후 가리고 구분하고 재정리하는 작업은 그다음이었다.

이를 위해선 이후 통으로 한꺼번에 빨아들인 콘텐츠를 거르는 일정한 장치가 필요했다. 최근의 최신식 정수기는 아니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물상 시간에 배운 물을 여과하는 방법이 있었다. 나무를 태워 만든 숯덩이, 작고 표면이 매끌매끌한 자갈, 모래, 솔가지 등까지 동원한 아날로그 방식의 정수기도 무방하다.

초등시절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나의 전반기 인생의 과업이 되었던 국가고시 합격을 위해 기나긴 수험 생활 중 여러 차례에 걸쳐 시험을 치렀다. 수험장에 들어서자 문제를 맞닥뜨린 즉시 이번엔 ㅇㅇ교수가 출제하였구나, 이건 XX 교수가 평소 강조하던 문제이구나, 나름 즉시 판단이 가능했다. 교과서나 참고서 등 교재에 몰입하여 정독을 할 때 스펀지가 물 등 액체를 빨아들이는 듯한 자세를 늘 유지했다. ‘이 문제는 자네만이 맞힌 것 같네’라고 이르며 혀를 내두르는 친구가 주위에 여럿이었다.

이는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수의 열강 중 말투, 손짓, 발짓, 표정, 인토네이션, 엑센트 등 일거수일투족을 스펀지처럼 모두 통으로 한꺼번에 빨아들이고 몰입하는 수강 자세를 보인 덕분이었다, 선생님ㆍ교수분들의 일화 농담 등이 등장할 경우엔 기억할 수 있는 유통기간이 더욱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 덕분이었다. 특히나 저명한 교수님의 "00강의" 수강에 몰입하게 되면 교재를 혼자서 5번 이상 정독하는 효과를 넘어섰다. 국가고시 2차 시험 주관식 답안지에 정답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느낌까지 덤으로 얻었다.

나는 결코 짧지 않은 학창 시절을 통틀어 수업 중 잠시라도 깜빡 졸아 본 적이 없다. “너는 도대체 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라는 친구의 물음에

“감히 어떻게 수업 시간에 졸 수 있지?”라는 반문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문학작품 속에서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인정하거나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현장부재 증명(알리바이)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감수성이 강한 어린이에게 종종 참고인 수준의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를 전한다. 그래서 의외로 사건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런 스펀지형 청취 자세는 수업ㆍ강의ㆍ특강 크고 작은 모임에서 발언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스펀지’나 ‘스냅사진 전문 사진작가’가 되어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하나도 빠뜨림이 없이 일단 그물 안에 모두 주워 담고 시작한다. 그 후 몸통, 줄기, 가지, 크고 작은 가의 구별이나 분류는 나중에 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어린 시절을 지나 엄청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일단 수강자나 수신자의 입장이 될 경우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감수성이 강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하나의 좋은 방식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정신집중ㆍ몰입ㆍ스펀지 자세ㆍ스냅사진 전문 사진작가의 자세 내지 역할을 자처함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꼭 경제적인 이득이 크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소통을 중시하는 원만한 대인관계의 구축과 유지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입은 하나인데 반해 귀는 두 개임은 말하기보다는 더욱 많이 들으라’는 경청의 자세를 강조하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무릇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줄곧 "어린 시절 강한 감수성"을 유지함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이른바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스냅사진 전문작가’라는 기나긴 별칭을 사양하지 않으련다. 초등시절 교감 선생님의 “어린이는 스펀지다.”라는 일갈이 오늘도 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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