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 시대 (1편)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300번지식 나이로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친구를 기준으로 잡았다. 4학년 말이 되면 만 10세가 되니 한자리 연식에서 두 자리로 점핑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10대 초반이 되니 초등 고학년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니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평소 위장 등 소화기 계통의 건강이 양호하지 못했다. 젖먹이들 일용할 양식인 분유통 크기와 모양이 아주 유사한 용기에 담긴 일양 약품산 노루모를 상시 복용했다. 바지 양쪽 뒷 주머니에 양손을 모두 깊숙이 집어 꽂고 팔자에 가까운 걸음걸이를 고집했다. 나와 초, 중학교 통틀어 무려 9년이나 같은 반이 된 친구가 가끔 선생님의 걸음을 흉내 내어 친구들의 웃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우리 4학년 담임 선생님은 문무를 겸비한 만능이었다.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이조 시대 정사에 오히려 더욱 흥미진진한 야사도 양념처럼 섞어 들려주었다. 사육신 생육신 세조 단종 등에 얽힌 이야기를 눈앞에 실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풀어나갔다.
어린 조무래기들에게 일찍이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훈련시켰다. 반장도 한 달마다 민주적인 4대 선거 원칙에 입각하여 뽑았다. 두 번째 달부터 내가 계속 당선되자 학년말까지 내게 반장 임기를 보장해 주었다. 과학 부문에도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제 역할을 다한 빈 링거병과 당시 흔치 않은 페트병 화분 등을 동원하여 교실 한쪽 여유 공간에 이른바 ‘수경재배’ 실습장을 마련했다
선생님은 300번지에서 디귿자 코스로 약 50 미터의 지근거리에 자리한 우리 한 해 후배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위로 딸 셋에다 "깽신히"(간신히) 얻은 아들 하나를 막내로 슬하에 두었다.
우리 집과 지근거리이다 보니 학교를 파한 이후나 주말에 선생님을 자주 조우했다. 뿌옇고 고운 흙먼지를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질경이가 양 사이드 경계를 알려주었다. 이런 일인 편도 보행 전용 길에서 선생님과 나는 가끔 교차 보행을 했다. 나는 머리 숙여 인사를 얼른 하고선 후다닥 목적지로 향했다. 학교 밖에서 뵈면 좀 서먹하고 어려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도가 정상이었다. 입은 열지 않고 꾸벅이는 동작이 나의 한계다. 나는 주변머리가 없었다.
그 해 7월 20일이었다.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을 했다. 돌이나 흙 덩어리를 우주선에 실어 지구로 정중히 모셔왔다. 선생님은 그 무게를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 구체적인 수치에 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60명 내외 반 어린이를 통틀어 가장 중량이 많이 나가는 여자 어린이의 몸무게와 비교를 했다. 우리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키득거렸다.
내가 큰고모 표 ‘상추 된장 비빔밥’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보행 전용 길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리던 중이었다. 앞집에 사는 후배 어머니의 호출을 받았다. 교과서ㆍ참고서도 아닌, 만화책과도 거리가 있는 ‘참된 어린이’란 책을 나의 2년 후배인 당신의 장남에게 꼭 사주어야 하는가를 물어왔다. 순간 내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졌다. 어려운 말(?)로 정무적인 판단이 요구되었다. ‘예 꼭 필요합니다’라고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후배는 나를 향해 두 눈을 두세 번이나 꿈뻑였다.
영동읍내와 관내 소재지를 왕복하는 일반 버스는 오전 오후 통틀어 대여섯 번밖에 되지 않았다. 직행과 달리 손님이 손을 들면 장소 불구하고 정차하여 그 누구라도 정중히 모셨다. 일반버스는 45인승 좌석버스였다. 24인승 내외의 ‘마이크로버스’라는 것이 등장하여 일반버스의 중간 공백을 제법 메워 주었다. 이 마이크로버스 운행권엔 메인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우리 친구네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들 했다.
정류장에 정차 중인 일반버스 뒤쪽에 지푸라기로 만든 새끼줄 서너 개 끄트머리에 커다란 돌멩이를 승무원이 눈치채지 못하게 단단히 붙들어 메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 가 ‘허궁’(함정)을 마련했다. 버스의 타이어 예상 진로 지점에 일정한 깊이의 구멍을 팠다. 나무 꼬챙이로 좌우 얼기설기 걸친 후 신문지 등을 씌웠다. 신작로 표면과 같은 색의 고운 훍으로 감쪽같이 덮었다. 때론 버스가 이 함정에 빠져 벗어 나오는 데 아주 애를 먹었다. 당시엔 이 정도 장난이야 난이도가 별로 높은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