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 시대(2편)
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공교롭게도 관내 소재지로부터 약 16킬로미터 정도 자로 잰 듯이 같은 거리 양편에 영동읍과 금산읍이 자리했다. 한쪽 끝인 금산읍까지의 교통편은 여의치 않았다. 드디어 금남여객이라는 이름으로 영동읍과 금산읍을 오가는 버스 노선이 새로이 탄생했다.
장래의 희망이 운전기사인 내 친구 태성이네는 최근 이사를 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각골 예배당 바로 아래에서 메인스트리트 조씨네 좀 빵(가게)이 있던 자리와 중국 음직점인 금성옥 중간으로 주소를 옮겨갔다. 드디어 기다리던 ‘반 굉일’(토요일) 수업이 끝나자 친구는 내게 도저히 거절하기 힘든 나들이 제안을 했다.
친구는 아매 다마(눈알 사탕), 보름달 빵, 쿨민트 껌, 이불 과자 등을 주섬주섬 챙겨 금산행 버스에 나와 같이 올랐다. 버스의 앞쪽 부분에 여유 좌석이 넉넉하게 있음에도 태성이는 가장 뒤쪽 일자형의 가로 좌석을 고집했다. 본인이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게 되어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준호야 이렇게 앉으면 무지하게 호숩단다.”
비포장도로를 주행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흔들림에 더하였다. 본인 좌석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쿠션을 배가시켜 짜릿함을 유감없이 즐겼다. 태성이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목적지인 금산읍에 도착해선 특별히 친인척 등 연고가 없기도 하고 지리도 잘 알 수 없었다. 대합실 인근에서 어슬렁거리다 다시 관내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좌석 버스 안에서 말 그대로 롤링에 따른 ‘호수움’만을 즐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었다.
4학년이 되면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1주일 중 5일은 오후까지 도합 6교시 정도 수업 시간표가 짜였다. 4교시 후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소재지 정도에 사는 어린이는 외출을 하여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엔 외출이 금지되어 부득이하게 도시락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외출 허용범위는 제한이 없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실제 밥을 먹고 학교와 집을 왕복하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무리가 없었다. 때문에 학교에서 비교적 먼 거리에 사는 친구들은 부득이 도시락 신세를 지어야 했다. 학교에서 가장 지근거리인 소재지와 이십 여리의 원거리에 사는 친구와 달리 어정쩡한 거리에 사는 친구들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친구들은 도시락 대신 뜀박질을 하여 집 밥을 고집하기도 했다. 먼 거리를 왕복하다 보니 그 자체가 운동이 되어 건강에 다소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식사 후 학교에 간신히 ‘쎄입’을 하면 이미 소화가 되어 다시 금세 허기를 느꼈다.
당시는 노란색의 두께가 제법 되는 뚱뚱하지만 표면적은 상대적으로 좁은 도시락이 대세였다. 백금색의 훌쭉하고 얇지만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너른 도시락을 가끔 구경할 수 있었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였다. 나도 장차 중학교에 올라가면 저렇게 근사한 도시락을 가질 수 있을까 나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참 부러움의 대상도 다양했다. 책보자기로 싸거나 가방에 넣을 경우에도 책, 공책과 훨씬 더 ‘아귀’가 잘 맞고 편리한 것은 후자였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코의 사이즈가 크고 꼿 대가 높아 자칭 타칭 ‘왕코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을 즐겼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내가 5학년을 마치기 전에 결혼을 했다. 반장인 내게 청첩장을 건네주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선생님의 결혼식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연히 내 책가방에서 나온 편지 봉투를 주의 깊게 살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바꾸어서 적은 것을 지적했다. 5학년 반장이 이렇게 편지 봉투도 제대로 적지 못한다며 혀를 끌끌 찼다.
야외 미술 시간에 버드나무 가지를 포물선처럼 꺾어서 그렸다. 이런 내게 정말 잘 표현했다며 과분한 칭찬을 했다. 받아쓰기 시험을 치르던 중 선생님은 부득이하게 세면장을 갈 일이 생겼다. 세면장을 다녀온 후 받아쓰기 시험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취지의 번외 문제까지 나는 맞혔다. 이런 내게 선생님은 가점을 주었다. 나는 학칙상 찾아볼 수 없는 120점이란 기록적인 점수를 받아 들었다. 여름날 상추쌈을 메인 메뉴로 선생님과 겸상을 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준호, 저 녀석만 좋아한다"라고 같은 반 여자 어린이의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