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 시대(3편)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루의 모든 수입이 끝난 후에도 칠판의 좌측이나 우측 상단 구석에 별도의 제목과 네모난 경계 표시를 하여 얼마간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실 대금을 내지 않은 어린이‘가 그 단골 메뉴였다. 이미 마감을 하여 종결 처리를 한 후에 수령한 씰 대금의 처리를 놓고 선생님은 고민하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특정한 퀴즈의 정답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영문 W에 세 개의 직선을 그어 9개의 삼각형을 만드는 문제는 장래의 희망이 운전기사인 친구가 제일 먼저 정답을 맞혔다. 이어 사칙 연산 문제가 주어졌다. 이 부문에선 주산 특활반인 내가 최종 승자가 되어 포상금을 받았다. 이러한 경과를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다. 포상금을 선생님에게 되돌려 주라는 분부가 떨어졌다. 내 성적표 통신란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자 어린이 성격 어쩌고 하는, 팩트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좀 당황스러운 평가도 내렸다.
영어 문자를 빌자면 선생님은 인쇄체 필기체 모두 뛰어난 명필이었다. 일정한 두께의 나무 꼬챙이를 목수의 연장인 끌 모양으로 삐져 깎아내선 먹물, 그림물감, 페인트를 묻혔다. 환경정리 시간에 게시판의 제목 글씨를 쓰는데 활용했다. 스승의 날 직전일에 선생님에게 ‘서프라이즈’를 보여 줄 목적으로 내가 선생님의 글쓰기 흉내를 냈다.
군인들의 제식훈련에 상당한 프로그램을 체육시간에 도입했다. 워낙 운동 신경이 따라주지 않는 내가 반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당해 수업 시간만 돌아오면 나는 식은땀을 흘렸고 이는 나중엔 트라우마로 발전했다.
선생님은 관내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서 당시 최신식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을 했다. 오후 작업시간을 활용한 대대적인 코스모스 길 조성 프로젝트도 완성했다. 먼 후일 보은군 모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아버지 장례에 문상을 왔다. 위로의 말까지 해준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선생님의 한 절친이 행정병으로 월남에서 군 복무를 했다. 이 선생님 친구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5학년 1반의 남녀 어린이 모두로부터 최소한 한 통 이상의 위문편지를 받는 대박이 터졌다. 일선의 전투 병과가 아닌 파월 장병 아저씨에게 베트콩을 몇이나 섬멸 내지 생포했느냐는 질문이 포함된 위문편지도 보냈다. 작은 해프닝이었다. 선생님의 친구는 휴가를 내어 귀국 중 모교 교실로 직접 초대되었다. 우리 친구들로부터 소소하지만 매우 궁금해하는 질문 세례에 기꺼이 응해 주었다.
어린이의 세계도 어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력, 파워 게임 등 이런 용어를 떠올릴 때 그 규모의 차는 있겠지만 본질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5학년 1반과 3반 반 대항 축구 시합 중 판정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각 반 우두머리 어린이 간에 티격태격하던 다툼이 반 대항 패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 ‘좋다 그럼 우리 수업 마치고 반대 반으로 한판 붙어보자’ 이렇게 싸움은 더욱 판이 커졌다. 마침 점심시간 중 외출이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면 소재지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전투에 필요한 재래식 무기를 준비, 동원하고 전략을 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동원되는 무기도 매우 다양하고 가히 위협적이었다. 드라이버, 송곳, 단도 수준의 과도, 군용 혁대, 쌍절봉, 야구 방망이 등을 순식간에 모았다. 이 정도 무기이면 인명 살상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드디어 결전의 시각이 다가왔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자연스럽게 반별로 삼삼오오 크고 작은 무리를 지어 교문을 빠져나갔다. 최종 목적지이자 결전장은 ‘슷날망 쪽 도시랑 거리(도살장)’로 이미 쌍방 간에 합의를 마친 지 오래였다. 1반에 소속된 나도 이 무리에 동참했다.
그런데 교문은 빠져나올 즈음 어디선가 급하게 나를 찾는 금속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어린이 2명씩 도합 4명이 1주일 단위로, 반 친구들을 위해 식수 준비, 칠판 지우개와 분필 준비, 청소상태 점검, 기타 담임 선생님의 자잘한 심부름 등을 해내는 당번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었다. 결전장으로 향하는 나를 친구들이 다시 교실로 돌려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