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내가 반 당번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교실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교문 밖으로 나서 결전장으로 향하던 5학년 어린이들은 1, 3반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 전쟁터에서 패잔병으로 포로가 된 병사와 같았다. 전의를 불태우던 방금 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 진군 경로의 역순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5학년 교실이 자리한 교사동 뒤편으로 이동했다. 체육시간에 집합하듯 대오를 지어 좌우로 정렬을 했다.
순식간에 상황은 반전이 되었다. 반 대항 세기의 전투 예비, 음모행위가 실행 직전에 탄로 났다. 어떤 경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투가 개시되기 전에 학교 당국에 들통이 났다. 이윽고 사태의 정확한 진상 파악과 그에 따른 체벌에 들어갔다.
시커먼 콜타르 칠이 된 직사각형 송판 대기를 가로로 때려 박은 건물이었다. 이 바깥벽에 양발을 올리고 양팔은 흙바닥을 짚는 물구나무 유사한 자세를 요구했다. 양 반 두목은 이 자세를 취했다. 선생님들은 사건 발단 경위와 진행 경과, 보유한 재래식 무기 등을 파악하고 향후 체벌 수위 등을 결정했다. 선생님들은 매우 긴장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모든 어린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이동을 했다. 각 반 담임 선생님의 체벌이 시작되었다. 우리 1반은 군용 야전 침대용 각목이 교실 안으로 전달되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반 당번이라는 우연한 사정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부끄럽게도 화를 면한 나는 밖에서 교실 안의 일어나는 상황을 짐작만 해야 했다. 동료 친구들이 각목으로 엉덩이를 마구 두들겨 맞는 소리와 친구들의 비명 소리를 가까이서 안타깝게 들을 수 있었다. 나만 이 커다란 위기를 모면한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들었다.
중고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이었다. 이 패싸움 미수 사건의 후폭풍으로 제적 퇴학 정학 이런 징계는 없었다. 5학년 어린이들의 체격과 체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체벌로 마무리되었다. 만약 실제 패싸움이 벌어졌다면 상당한 인명 피해도 예상할 수 있었던 좀 오싹한 추억이었다.
우리 6학년 담임선생님은 6척 장신의 배구 강 스파이커였다. 국가대표급 운동선수라 해도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애국가 봉창 지휘자로 매번 나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영문도 모르게 울음보를 터뜨렸던 친구는 장마철에 미꾸라지를 잡는 실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사발 복자’가 새겨진 사기그릇 한 사발에 80원에 내다 팔아 용돈을 아주 긴요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이미 부업이 된 이 ‘어로작업’ 때문에 친구는 시간 여유가 별로 없었다. 가끔 숙제를 걸렀다. 선생님에게 심한 꾸중을 자주 들었다. 선생님은 친구의 뱃가죽을 움켜쥐고 몇 번 ‘밀당’을 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한 친구의 두 눈엔 가끔 맑은 액체가 고이는 것이 보였다. 나도 다른 건으로 이 밀당을 경험했다. 어린 ‘삭신’에 피멍 자국이 남기도 했다. 분명 도를 넘는 체벌임이 분명했다.
선생님은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투박하고 탄력이 좀 떨어지는 물건도 동원했다. 5일장 상인들의 봇짐을 화물차에 실은 후 많은 보따리를 결박하는데 흔히 사용했다. 켜켜이 쌓인 실밥 줄이 드러난 밧줄과 같은 재질이었다. 바로 다름이 아닌 ‘뚝 고무 슬리퍼 짝’이었다. 이 물건의 뒷부분으로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생사여탈권’이 머리에 떠올랐다.
선생님은 교사용 학습지도 교재를 나에게 선뜻 건네주었다. 나에게 자습시간의 진행을 맡긴 것이었다. 수련장도 옆에 펴 놓았다. 내가 씩씩한 목소리로 문제를 읽으면 친구들이 손을 들어 지명을 받은 후 정답을 외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특정 여자 어린이를 지정할 경우 ‘얼레리 꼴러리’가 두려운 나는 어정쩡하게 ‘다 같이’로 방향을 틀었다. 교묘하게 어려운 상황을 모면했다. 결국은 개별 여자 어린이는 한 번도 지정을 받지 못하는 파행이 이어졌다.
6학년 1반 어린이 전부를 대상으로 본인과 가장 친한 친구를 적어내게 하고 이를 분석하는데 우연히 해당 파일을 목격한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적어낸 친구도 당연히 나를 적었을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가 보기 좋게 밧나갔다. 같은 집안 친척이나 같은 부락에서도 가장 지근거리에 사는 친구를 택하였노라는 결론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