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매주 월요일 전체 마당 조회 시간에 애국가 봉창‘은 바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봉창이란 주머니의 다른 이름이 결코 아니었다. 감히 애국가를 받들어 부르다는 뜻이었다. 친구들 모두는 이 봉창이란 말에 매번 키득거렸다. 실제 이러한 정확한 의미를 내가 알아내는 데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지휘는 당연히 우리 1반 선생님이 매번 나섰다. 중간놀이 시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음악 시간엔 새로운 노래를 가르칠 때 가사로 한 소절씩 따라 부르기 전에 박자를 먼저 익히게 하느라 ‘딴 딴따안 딴딴’등부터 연습을 시켰다. 기회가 될 때마다 반장인 나를 제일 먼저 지명했다. 나는 소리를 다스리고 거의 박치인 바람에 식은땀을 자주 흘리곤 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바로 앞둔 시점이었다. 장차 성장하면 어떤 사람이 되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차례로 교단 위에 올라 발표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고 그 이유를 이야기할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4학년 시절 내게 고맙게도 금남여객 시외버스로 금산 나들이 기회를 주었던 친구였다. 태성이는 그저 운전이 좋아 직업 운전기사가 되고 싶다는 간단명료한 내용을 임팩트 있게 발표했다. 이 친구는 결국 많지 않은 나이에 본인의 꿈을 이루었다. 간절한 바람에다 합당한 노력을 한 결과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 어린이들에겐 국군 최고통수권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희망이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나는 당돌(?)하게 이 통수권자의 취임식 때 선서를 받는 사람이 되겠다고 자신 있게 발표를 마무리했다.
탄력이 떨어진 네모 모양의 커다란 그물코가 연상되었다. 이렇게 느슨해진 배구 네트와 본인들의 키보다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비봉산을 올랐다. 겨울철이 되어 토끼 사냥을 나선 것이었다. 5, 6학년생만 모아서 출정을 했다.
특히 오르막길 달음박질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산토끼를 몇 마리 구경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토끼를 모교 교정까지 모셔오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 2년 선배들은 토끼 두어 마리에다 ‘살가지’도 포획하여 여러 선생님이 같이 푸짐한 회식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왔다. 앞다리에 비해 훨씬 긴 뒷다리를 가진 산토끼를 비교적 손쉽게 모셔오기 위해선 오르막길이 아닌 내리막길로 ‘훌겨야’한다는 작은 요령을 알게 되는 계기였다.
전교생의 수업이 종료된 수요일 오후엔 배구 시합이 벌어졌다. 막걸리를 하나 가득 채운 한 말들이 노란색 알루미늄 주전자를 어김없이 매번 대령하였다. 서너 명의 우리 친구 일행은 낙우송 인근의 미끄럼틀 위에서 이 경기를 즐겁게 관전했다.
세터인 박 선생님은 자로 잰듯한 토스를 뽐내며 우리 담임 선생님을 향해 "최선생! 패댜~"를 동시에 외쳤다. 6척 장신의 선생님은 이에 강스파이크로 화답을 했다. 입장료가 없는 무료 관객인 우리 친구 일행은 이 정도 순간에 환호와 박수로 응원을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저 시대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 심판 판정에 시비가 벌어졌다. 나의 4학년 담임 선생님은 항의의 뜻으로 비교적 가벼운 배구공을 경기장 밖으로 힘차게 내질렀다. 온화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대단한 키리스마의 소유자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배구대회에 참여하는 선생님은 무두 한 명도 예외 없이 하얀 바지를 유니폼처럼 챙겨 입었다. 그 흔한 운동복이 등장까지는 아직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둘째 이모는 당신의 피붙이인 나를 오랜만에 전화로 몸소 호출했다.
“준호야 난 네가 다른 조카보다 훨씬 이무럽단다. 시간이 되면 얼굴 좀 한번 보여줄 수 있니?"
핸드폰 너머의 또렷또렷한 이모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걸 아주 좋은 핑곗거리로 끝내 나는 이모를 찾아뵙지 못했다. 그 이후엔 다시 한번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로 남았다.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엄청난 세월이 지난 뒤였다. 나의 선친이 있는 비봉산 삼부 능선의 선산에 들러 성묘를 마쳤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상지 부락 입구 마을 공용 창고 추녀 아래서 여전히 6척 장신인 6학년 담임선생님이 여우비를 긋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애마를 멈춰 선 선생님을 모시고 둥그런 화덕에 마주 앉아 대포 한잔을 나눌까 망설였다. 이를 끝내 실행을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선생님은 초등생 시절 남달리 나를 끔찍이 챙겨주었고 내게 늘 우호적이었다. 그 후에도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준 선생님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제자가 되고 말았다. 건장한 체격과 매우 건강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선생님은 상당히 이른 연세에 타계를 했다. 이런 날벼락같은 부음을 전해 들은 내가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모와 6학년 담임선생님은 나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기회가 내게 다시 주어진다면 결코 한이 남지 않도록 소정의 미션을 포기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