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자고. 일반 밥집 하고는 또 달라. 이제 우리가 더 나이 들면 생맥주집에서 반기지도 않거든. 그러니까 그전에 우리는 생맥주를 부지런히 마시자고?”
오늘도 친구 민우는 범상치 않은 명언을 쏟아냈다.
비단강 상류 기가 막히게 전망이 좋은 명당자리에 고향 친구 민우는 일찍이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정식 건축물은 아닌 컨테이너 박스의 가건물이었다. 그래도 전원주택의 구실을 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민우는 주말마다 이곳에 내려왔다. 주중 내내 찌든 영혼을 힐링했다.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했다. 일정이 맞는 친구들은 빠뜨리지 않고 늘 이곳을 찾았다. 이제 우리 죽마고우 고향 친구들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였다.
민우는 이곳에 주방과 화장실 등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다. 그래서 결코 짧지 않은 공정에 들어갔다. 현재 보금자리가 자리 잡고 있는 뒤편의 산기슭 일부를 헐어내어 부속 토지를 채우고 지반을 높였다. 진입로도 다른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주방 등 추가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과 평탄 작업을 했다. 기존의 헛간에 가까운 빈자리에 널브러져 있던 세간살이를 잠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고향 친구 성수와 내가 거들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 관내 인구는 가장 많던 시절 7,000명 대에서 최근 1,400명으로 20%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다. 그래서 농협이나 파출소도 이웃 행정 구역인 학산면으로 통합되는 수모를 겪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인근을 지나거나 공장 시설을 갖춘 다른 면 단위에 비해 아주 열약한 형편이 되었다. 우리 친구들이 20대 초 중반 시절은 항상 동네가 북적댔다. 특히나 2대 명절 전후엔 이른바 메인스트리트 거리를 일이십여 명이 휩쓸고 다니던 화려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24시간 주점이나 새벽 2시까지 이어가던 음식점을 찾는 것은 아주 옛 일이 되었다. 오후 8시 전후가 되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점이나 주점은 모두 문을 내렸다. 큰길을 오가는 인적도 아주 뜸해졌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웃 행정 구역인 학산면 생맥주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오래전 영동 읍내를 오가던 45인승 시외버스의 정류장이었던 공간은 농협 거래를 하거나 하나로마트를 오가는 차량들의 주차장이나 주말 이동식 미니장터로 이용할 뿐이었다.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란 것엔 모든 친구가 동의했다. 그래서 승용차를 몰고 나설 생각은 아예 접었다. 이곳에서 10여 리 떨어진 생맥주집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가 작은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운수 좋은 날임에 분명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입구 쪽 한편에 개인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에겐 ‘거저 굴러 들어온 호박 덩이’였다. 그래서 나와 민우, 성수 이렇게 셋이서 얼른 택시에 몸을 실었다. 핸들을 잡은 드라이버는 학산면이 출생지라 했다. 생맥주집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임을 먼저 알렸다.
“장거리도 운행하세요? 어디까지 갈 수 있나요?”
“그럼요. 대전도 갈 수 있고 서울도 가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이 드라이버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대답을 자신 있게 이어갔다.
이 택시는 '소나타’란 엠블럼이 트렁크 바깥쪽 위 부분에 분명히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차량 형편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실내 공간을 제외한 차량 성능은 말이 아니었다. 방금 전 드라이버가 자신 있게 말한 장거리 운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지긋한 연세의 이 드라이버는 오토메틱이 아닌 수동식 차량의 핸들을 잡고 있었다. 기어 변속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정기점검도 건너뛰었거나 수시로 차량 상태 체킹을 하지 않은 듯했다. 우리가 엉덩이를 붙인 좌석의 아래 차량 하체 부분에선 불규칙하지만 지속적이고 시끄러운 굉음이 들려왔다. 우리 모두를 무척이나 불안에 떨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