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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4. 2022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2편)

                      

품질이 뛰어나고 피부에 좋다는 온천탕 덕분인 듯했다. 친구들 얼굴엔 푸른빛의 광채가 돌았다.  번째 스물이 아닌 첫 번째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에 합류한 듯했다. 나의 어린 시절 조그마한 로망 아이템이기도 했다. 친구들은 침실용 이브닝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이미 귀족과 귀부인이었다. 품격과 세련된 디자인을 모든 갖춘 근사한 복장이었다. 

    

아버님, 이 사람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잘  못 한 것 한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내가 군것질을 하라고 모처럼 용돈을 조금 주었지. 그런데 이 녀석이 말이야. 군것질은 하지 않고 학용품을 구입하였지 무어야. 게다가 남은 자투리는 저금통장에 넣어버렸거든. 이 아비 말을 어긴 적이 있어. 굳이 잘 못한 일을 꼽으라면 그것 하나였지.”     

예비 며느리와 식탁에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였다고 했다. 순간 우리 친구 모두는 배를 잡고 요절복통을 했다. 방안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가이드님, 이 집 음식 맛이 너무 짜네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제 입에는 딱 맞는데요. 이 것이 왜 짜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고향 동기들이 일본 여행 둘째 날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선 식당에서의 일이었다. 우리 친구 동기들은 음식의 간이 너무 세다고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달리 가이드는 자신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우겨댔다.

     

나는 갑자기 울화통이 터졌다. 음식 맛에 관한 평가의 권한은 이번 여행의 소비자인 우리 친구들에게 있었다. 판단을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가이드를 위한 여정이 아닌 우리 친구들의 것임은 너무나 자명했다. 한심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가이드 본인은 오랜 기간 동안 이곳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자신의 미션을 이어오고 있었으니 이곳 음식점의 입맛에 이미 길들여졌을 터였다.

     

금융서비스업에 몸을 담고 있는 나로선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모든 관광객이 음식의 간이 너무 세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를 수긍했어야 했다. 그런 다음 주방장과 협의를 해서 응급조치에 나섰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사태가 수습이 가능할듯했다.

           

이 가이드는 자신을 찾은 고객들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사태의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욱 키웠다. 음식의 간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관광객들에게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꼬박꼬박 대꾸에 나섰다. 참으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들어부은 격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낸 우리 동기들의 의견이나 니즈를 한방에 뭉개버렸다.   

  

나는 금융서비스업에 오랜 기간 몸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금융 분야는 물론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금세 읽어낸다. 다른 누구보다 그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내공이 이미 쌓여 있었다. 부실한 대응이나 불친절한 언행을 눈치 챌 수 있는 육감이 누구보다 더 발달했고 예민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업무차 들를 경우 내가 원하는 업무 처리에 매진하지 않고 직원들 간에 이루어지는 잡담이나 허튼 짓거리를 그저 보아 넘기지를 못했다. 양복 정장 등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을 찾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판매직원이 딴청을 부리는 것은 즉석에서 지적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른바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동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우리 영업점을 찾는 고객에게 내가 성심성의껏 응대하듯이 나 또한 그러한 같은 레벨의 대접을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이었다.

 

나에게 응대 시 불친절하거나 내 기준에 모자랄 경우 즉석에서 거침없이 잘못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사과도 받아냈다. 이 것이 어느새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오늘 가이드의 우리 관광객에 대한 이런 응대에 관한 대응은 여행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귀국 후로 일단 미루기로 했다. 이 가이드는 아주 가장 간단한 기본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같은 관광객 때문에 자신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미지 개선을 위해 나도 이젠 고스톱을 자제해야겠어.”
 “지난번 일본 여행에서 자기 관리 차원이라며 고스톱 게임에 아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잖아?” 

    

그저 깊게 생각하거나 엄청난 대의명분을 내건 다짐은 절대 아니었다. 농담을 섞은 나 혼자만의 구시렁거림에 가까웠다. 술자리에 더 집중하다 보니 그러한 내 작은 다짐을 결과적으로 실천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혜주는 이를 두고 내가 대단한 미션을 해낸 것마냥 과대 평가했다. 나로선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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