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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3. 2022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1편)

                       

모처럼 물 건너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우리가 꼽사리 껴도 될까?”

물론이지,”

몇 명이 갈 수 있는데?”

다다익선이야,” 

    

우리 고향 여자 동기 12명 중 몇몇은 미리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을 준비했다. 매월 불입하는 적립식으로 여행 경비를 차곡차곡 모았다. 이에 머슴아 동기들도 합류할 것을 권유받았다. 4명으로 낙착이 되었다. 결국은 여행용 케리어를 운반하는 짐꾼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오갔다. 

    

혜주의 지인이 꾸려가는 여행사에서 디자인한 패키지 상품이었다. 일정한 인원을 채울 경우 우리 동창들만으로 단독 일정을 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더욱 귀가 솔깃해졌다. 내가 우리 큰 아들이 태어난 이듬해 회사 측의 배려로 34일 일정으로 나녀 온 적이 있는 일본이 여행 목적지였다. 

    

민족 양대 명절이 다가올 즈음 어린 시절엔 어머니를 졸라댔다. 이번 설(추석) 빔은 무엇을 해 줄 거냐고 벌써부터 어머니를 보챘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내가 직접 장만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 여행 대비 셀프 빔이었던 것이었다. 

    

우선 가성비가 좋은 심플한 디자인의 운동화를 장만했다. 여기에 운동복도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줄로 멋지게 도안을 한 세련된 상품이었다. 최근 주식시장이 썩 좋은 상황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무리를 했다. 

    

하나 둘!, 셋넷!”

우리 친구들 모두는 새로이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가끔 화산이 터지는 모습을 구경하기가 어렵지 않은 곳이 일본이었다. 휴화산의 화산 열을 이용한 온수 노천탕도 널려 있었다. 우리 모두는 양말을 모두 어젖혔다. 그런 다음 삼삼오오 서로 마주 보며 무릎의 1/3 높이까지 이 온천수에 다리를 푹 담갔다.

     

인근 연못에선 갑자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지하 온천수가 화산에서 분출되었다. 이에 시너를 뿌린 듯이 순간 불기둥으로 변신을 했다. 초등생 시절 교정의 한곁에 자리한 연못을 방불케 했다. 우리 학교의 연못은 직사각형이었는데 일본의 그곳은 원형이라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가이드(현지 관광지 근무자)는 족욕을 마친 관광객을 모두를 2열 종대로 모았다. 자신은 관광객 일행을 마주 보고 뒷걸음 질을 치며 구령을 선창 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자연스레 이에 큰 소리로 후렴을 외쳤다.    

 

우리가 자신들의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말이나 영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후렴을 유도했다. 한 때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매몰되었다고 빈정대는 경제적 동물이란 것을 굳이 들먹일 필요는 없을 듯했다. 별 것이 아닌 자그마한 관광상품에 관광객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일본인 안내 직원의 호각 소리와 구령에 우리는 착한 코흘리개 아이들처럼 오와 열을 맞추고 씩씩하고 큰 소리의 후렴으로 절대적인 호응을 했다. 박수와 환호가 잇달았다. 우리 일행은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처럼 아무런 걱정이 없이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강원도 산골 오지 마을이 연상되었다. 자작나무가 유난히 빼곡히 들어선 한적한 읍 크기의 소도시 변두리였다. 우린 첫날 저녁 이곳에 짐을 풀었다. 여자 동기 모두와 좀 부지런한 남자 동기는 벌써 호텔 지하에 자리한 온천 욕탕을 들렀다.  

   

아주 여유 있게 너른 다다미 방 내지 작은 홀이었다. 우리 친구 모두 일석점호가 시작되었다. 견고하고 육중한 느낌을 자랑하는 원목 식탁을 세로로 길게 붙여 배치했다.  저녁 식사는 1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마친 뒤였다. 조선 토종 음식에 오랜동안 길들여진 나로선 저녁식사 메뉴에 그리 만족을 하지 못했다. 이제 본격적인 술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저녁식사 메뉴의 부족분을 이곳에서 메꾸기로 했다.

     

몇 해전 우리 고향 통합 동창회 무주 수련원 모임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고향 절친 성철이었다. 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위해 오늘 한 번 더 멍석을 깔아주기로 했다. 오늘도 그 방대한 콘텐츠가 담긴 보물창고에서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차근차근 하나씩 끄집어내어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친구의 입담 살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스물을 살아오기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에 깔았다. 게다가 약간의 ‘MSG’를 조금씩 ‘흔쳐’ 넣는 무용담이 주류였다. 

    

수시로 잔을 부딪혔다. 술잔이 여러 순배 돌았다. 친구의 지적 재산권이 붙은 이야기를 우리 모두는 대가 없이 공으로 즐겼다. 시각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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