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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5. 2022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3편)

                    

세진이 하면 술, 고스톱 무어 이런 것부터 떠오를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어. 이젠 운동도 하고 책도 부지런히 읽으며 글도 쓰고 말이야...”

라고 주문을 외듯 해왔던 것이었다. 고향 친구들 크고 작은 12일 모임에선 다음날 차량의 안전 운행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래서 가끔은 이 고스톱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횟수를 늘리고 있다.

 

무릇 사람의 이미지나 평판이란 것은 한 번 형성되거나 굳어지면 좀처럼 이를 바꾸기란 어려운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결단에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가미된다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예 단절은 불가하더라도 최소한 결단력이 있는 친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추가할 수 있으니 이나마 남는 장사인 셈이었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나요?”

요즘 주위에서 너무나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작금의 흡연에 관한 최신 트렌드를 읽어내기란 땅 짚고 헤엄치기이다. 남성의 흡연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여성의 그것은 늘어나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건강상 이유 등으로 중년 이상의 남성의 흡연 인구의 감소에 성년 전후에 새로이 진입하는 흡연 인구는 기성세대들의 규모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젊은 여성들이 새로이 흡연 인구에 데뷔하는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 고향 친구들만 보더라도 남자 동기들 중 아직까지 애연가로 남아 있는 사람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러다 보니 담배를 입에 물려면 최소한 일단 건물 밖으로 나서야 하는 등 왕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래 담배를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흡연족이니 ‘골초’니 하는 말은 나에겐 딴 나라 이야기였다.

     

요즘 병원 다니느라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끊었다며?”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내가 전립선 비대증으로 대학병원을 오갈 때였다. 직장 동료의 안부 인사였다. 참으로 세상은 좁고 직장은 더욱 좁았다. 이런 내 처지를 동료는 어디선지 모르지만 금세 전해 들은 것이었다. 다른 점포에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최근 근황을 일일이 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지와 평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이다, 가락지! 사이다, 가락지!”

내가 초등학생 시절 소풍 가는 날 맛볼 수 있었던 소매가 25금강사이다에 딱 맞았다. 용량이나 디자인에서 그랬다. 화산 열에 의하여 데워진 따끈따끈한 희뿌연 색의 온천수로 족욕을 즐기던 우리 친구들 일행이었다. 별로 세련되지 못했고 결코 고급 브랜드가 아닌 2홉들이 사이다를 나누어 마시던 중이었다. 병 안의 내용물엔 보기 드문 소품이 눈에 띄었다. 반지 모양의 작은 링과 몇 개의 구슬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친구들 모두의 사고 체계는 서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소품을 보고선 각자 무슨 연상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구는 ‘낙타 눈깔’과 알박기를 생각해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아주 훌륭하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건배사가 돌연 탄생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회사는 독특한 조직의 문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건배사 제안이었다. 작게는 지점 단위 회식 자리부터 크게는 본부에서 벌이는 직급별 책임자 연수나 분기마다 맞이하는 부서장 회의 이후 회식 때마다 예외가 없었다. 테이블마다 혹은 직원 개개인이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건배사 제안을 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이 된 지 오래였다. 참석자 모두는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건배사 제안을 이어가는 차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포털사이트를 열심히 검색을 하여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그럼에도 앞에 배치된 연사가 자신이 준비한 것과 똑같은 건배사를 외치면 다른 연사의 노력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에 대비하여 예비 아이템도 넉넉히 준비를 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경영방침, 영업점의 특성, 상품의 내용과 관련된 건배사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콘텐츠는 별로 환영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는 국정교과서를 들추어내어 그저 읽어 내려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주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참신한 건배사를 발굴해 내기란 지난한 작업이었다. 때론 이 건배사 제안의 부담감 때문에 울렁증이 생겨나는 직원들도 드물지 않았다.  

   

이번 우리들이 발굴해낸 회심의 이 건배사 구호는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그것도 모두가 합창하듯이 동시에 터져 나온 대박 작품이었다. 이름하여 가락지, 사이다!”였다. 관제 성격이 조금도 없었다. 의무방어전이나 국정교과서를 들추어 해당 편을 펼쳐 끄집어낸 창의성이 없고 그저 밋밋한 구호가 아니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난 걸출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창의성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쩍이는 역작이었다.   

   

공무원 조직이 아닌 상시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는 순수 민간 조직에서 탄생이 가능했음은 물론이었다. 우리 친구 일행이 이번 일본 여행 기회에 이 독특한 사이다를 나누어 마신 이력이 없는 그 누구도 이 건배사의 기원이나 탄생 배경을 알아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번 묻어버리면 100년 후에나 공개된다는 타임 캡슐’ 안에 제일 손꼽히는 건배사란 자리를 차지해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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