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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6. 2022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4편 완)

            


약 반세기 코끼리 밥통’의 열풍이 재현되었다. 우리나라 전기 전자 산업이 일본에 한참이나 뒤쳐진 시절이었다. 일본을 다녀오는 관광객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예외가 없었다. 이들은 코끼리밥통을 기본적으로 하나씩 짊어지고선 김포공항에 내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유수한 기업의 유명브랜드 밥통의 품질이 한참이나 모자랐으니 이는 어쩌면 전혀 이상한 구도는 아니었다.


내가 약 25년전 회사의 배려로 참여한 일본 여행 때만해도 지금과 달랐다. 한국인 가이드는 일본에서 이름난 전자 상가 단지(백화점) 방문을 관광 코스에 꼭 끼워 넣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분부로 AM FM겸용 라디오를 들여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전자제품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을 추격하고 때론 추월까지 이루어낸 부문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제2의 코끼리 밥통인 ‘파스'구매 소동이 벌어졌다. 어깨나 허리 등짝이 결리거나 담이 붙은 경우 이를 해결하는 가정상비약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문제의‘파스’를 손에 넣으려고 친구들 모두는 줄 서기 경쟁에 나섰다. 네모난 모양에 이어 그런 모양의 동전형 파스도 새로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이나 의료기술 수준이 일본에 비해 결코 뒤진다는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은 지금이었다. 

의외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볼 때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친구들이 이 파스를 서로 사려고 나선 이유는 가성비가 좋다는  하나밖에 없을 듯했다. 약 3년 여가 지난 지금 우리 친구들이 앞을 다투어  여행용 가방에 챙겨 넣었던 일본산 파스의 현주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른 친구 친지 친인척들과 이 파스를 나누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자신 가족들의 치료 용도로만 사용했다는 가정을 해보았다. 아마도 서랍이나 다른 수납공간

에서 고스란히 잠을 자고 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을 해본다.


일부 고도의 원천기술이 요구되는 부문처럼 아직도 일본과의 격차가 유지되는 부문은 이제 많이 줄었다. 이제 제조업의 각종 부문에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여행 기간 중 우리가 특별히 여행용 가방에 담고싶은 아이템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25여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일본과 일본인이었다. 시가지는 청결했고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 모두가 인사는 몸에 배어 있었다. 편도 4차선 이상 도로는 물론 그 보다 좁은 이면 도로나 골목길은 깨끗하게 잘 정돈된 상태를 늘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젠 이런 부문에서도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면도로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골목의 일부 귀퉁이엔 쓰레기 더미나 휴지 재활용품이 널린 풍경을 가끔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직 현실이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의 안전을 책임진 관광버스 기사는 우리가 차량에 오르내릴 때마다 연신 고개를 조아렸. 게다가‘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일본이란 나라의 국민성 자체가 본래 그런지 교육의 효과 덕분인지 알 수는 없었다.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고 이에 따른 행동거지는 물 흐르듯이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도로의 폭이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았다. 특히 에스컬레이터는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인지 우리나라 수도권 대도시 그것에 비해 폭이 절대적으로 좁았다.


도로 위를 오가는 모든 차량들은 교통 신호를 철저히 지켰다. 예비 정지선조차 넘어 정지하는 차량은 한 대도 구경할 수 없었다. 교통사고 발생률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통계를 자랑할 듯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만능엔터테이너 친구와 여행 기간 내내 룸메이트가 되었다. 이러다 보니 우리 방이 식사나 잠을 자는 시간 외엔 친구들 모두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리 너른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방바닥이나 탁상용 의자, 또는 침대 위에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회포를 풀고 술잔도 수시로 부딪혔다.


“에이, 3박 4일에 그 정도 비용으로 우리나라를 돌아다니면 매끼 식사를 생선회로 채워도 남았을 걸세 그려.”


이번 일본 여행에 아쉽게도 같이 참여하지 못한 고향 절친이 한 마디 건넸다. 전혀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길에 오르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점과 언어의 장벽 등은 국내 여행 대비 장애 사유이었 것은 분명했다.


“이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이란 이름을 달고 나는 벌써 여행을 3번이나 다녀왔어. 우리 직원이 상무님은 도대체 같은 핑계로 여행길에 몇 번이나 오르셨냐고 묻기도 했어.”

또 다른 고향 절친의 즐거운 푸념이었다.


고향친구, 직장, 기타 크고 작은 모임 숙박 여행에 이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의 딱지를 적어도 한 두 해 정도 더 우려먹어도 별 문제는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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