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Aug 07. 2022

너무 잦은 액땜 기회(1편)


                            

                       

보험회사이지요? 여기 장수동 지하도 입구 200미터 전입니다. 편도 4차선 도로 중 2차선 위에 있어요. 제 차가 갑자기 퍼졌습니다. 참 난감하네요. 빨리 출동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세상에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네.’ 

    

차가 퍼진다는 것은 나 아닌 남들에게만  생기는 일인 줄 알았다. 오늘 오후 용무차 모처 사무실에 들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혹시를 염려하여 시동을 다시 걸어보았다. 최근 크고 작은 경고등이 내게 미리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무슨 이유인지 나의 애마는 내 분부를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

     

계기판의 여러 개의 경고등은 수시로 자신들의 존재를 내게 알렸다. 일단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호출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단다. 그래서 속칭 점프라는 응급조치를 마무리했다. 시동이 켜진 상태로 30여분 이상을 기다렸다. 용무를 마치고 시동 버튼을 다시 지그시 눌러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점프를 했는데도 시동을 거는데 실패했다.   

  

2시간 전에 신세를 진 바 있는 정비소 직원을 다시 한번 더 호출했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으니 교체만이 답이라 했다. 전문가 진단과 처방을 기꺼이 따랐다. 이번에는 시동을 거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이곳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자리한 2차 목표지점까지 조심스레 운행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차량의 상태는 정상에 모자라는 듯했다. 최종 목표 지점까지 약 3킬로미터 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범상치 않은 신호들이 발견되었다. 핸들이 우선 제대로 주인의 말을 듣지 았았다. 좌우로 약 30도 반경 내에서는 그런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범위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면 뻑뻑해졌다. 조작이 매우 힘들어졌다. 계기판의 활성화된 경고등 숫자는 몇 시간 전 배터리 교체 이전보다 몇 개 더 늘어났다.      

제발 조금만 더 버티어다오. 최종 목적지가 바로 코앞인데 예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자기 체면에다 간절한 바람까지 보탰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훨씬 악화되었다. 이젠 내비게이션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차량 양쪽 네 개의 문을 여닫는 자동스위치도 내 분부를 나 몰라라 했다. 오디오까지 드디어 작동을 멈추었다. 이 것 참 큰 사달이 난 것이었다. 이럼에도 나의 최종 목적지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주행을 이어가고자 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로그오프’가 결국 내 애마에도 찾아왔다. 승용차는 제 자리에서 조금도 미동을 하지 않았다. 정상운행의 최종정지를 내게 알렸다.   

   

차량이 퍼진다는 것의 체험 기회가 내게도 주어졌다. 방향 표시등은 물론 비상점멸등도 끄떡을 하지 않았다. 나는 운전석을 박차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먼저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차량의 트렁크 문을 최대한 위로 열어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들에게 비상사태의 발생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수동으로 다시 시도했으나 이도 무위로 돌아갔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은 벌써 땀방울로 뒤범벅이 되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사태에 대비하여 오래전에 비상사태를 알리는 빨간색 철재 삼각대를 마련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경황이 없었다. 그 물건의 소재가 떠오를 리가 없었다. 트렁크를 열 수가 없으니 삼각대의 향방을 수소문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었다.  

   

 지역은 평소 상습정체 구역으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이렇게 우왕좌왕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문제의 내 차량 뒷 끄트머리부터 약 10미터 내외의 안전거리를 우선 확보하러 나섰다. 그 후 교통경찰이나 모범 운전수가 보여주던 수신호를 흉내내기로 했다.

     

이런 경우 긴급을 알리는 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옷가지나 생필품이 담긴 봇 짐이나 종이 상자 등을 차량 뒤편의 노상에 배치하여 긴급상황을 보다 널리 알리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차량의 안쪽 좌석엔 이러한 물건은 어디에도 없었다. 트렁크 안쪽에 혹시 이런 것과 비슷한 대체물이라도 있나 찾아볼까 했지만 트렁크 문을 열 수 없으니 이도 어려웠다. 정말로 난감했다. ‘공습경보’ ‘비상사태’ ‘진퇴양난’ ‘위급상황이런 설명이 이에 딱 들어맞았다.

작가의 이전글 세 번째 스물 맞이 여행(4편 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