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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8. 2022

너무나 잦은 액땜 기회(2편)


 수신호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까 하는 것도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이때 나름 괜찮은 방식이 떠올랐다. 초등생 시절 전체 마당 조회나 중간놀이 시간에 자주 실행했던 ‘재건 체조’가 그것이었다. 이 체조의 매뉴얼 중 ‘팔다리 운동’의 초기 동작을 무한 반복하기로 했다.

     

이 정도 양쪽 팔을 움직이는 것은 내게 아직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멀쩡하게 제법 기다란 양팔을 90도로 들어 올려 한데 모았다. 이 상태에서 모세의 기적을 재현하듯 했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갈라지듯 양쪽 팔을 쭉 펼쳐 한일자로 만들었다. 다른 운전자에게 내 애마가 차지하고 있는 2차선이 아니라 1차 또는 3차선을 이용하라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중간중간 차량 운전자들에게 위급상황을 알리는 즉흥적인 다른 작은 수신호도 섞었다.  이렇게 지난한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음에도 나의 긴급출동 요청을 받은 견인차는 아직도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좀 전에 출동을 요청한 사람인데요.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신가요?”

출발은 벌써 했는데 길이 워낙 막히는 곳이라서요.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재건 체조 팔다리 운동 초기 동작을 끝없이 이어가던 중이었다. 내 구세주인 견인차 행적을 통화로 점검했고 신속한 출동을 두세 번이나 독촉했다. 한 손으론 통화를 위해 휴대폰을 들었고 나머지 다른 한 손으론 수신호를 계속 이어가야 했다. 

    

내 애마에 동승자라도 있었으면 이 정도보다 형편이 나을듯했다. 위급 상황을 알리는 재건 체조 버전의 수신호와 구급차와의 교신이란 역할을 분담하거나 임무 교대도 가능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 홀로 운행 차량이었기에 더욱 난감했다. 오로지 나 혼자서 온전히 모든 미션을 감당해야 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서 이어가는 여정이란 그럴듯한 문구도 떠올랐다.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오늘의 구세주인 견인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 애마가 발걸음을 멈춘 후 무려 45분이 넘어서는 시각이었다. A매치 축구경기 전반전 타임을 모두 소진한 것에 딱 들어맞는 시간이었다.  퍼진 내 애마 주위를 운행하는 차량들은 이 견인차의 행차 사실만으로 벌써 긴급상황이 터졌음을 인지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나의 애마 흰색 아반떼와 재건 체조 팔다리 운동 초기 버전의 수신호를 합친 것보다 훨씬 파워풀한 ‘공시 효과’가 있었다. 

    

나에게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찾을 수 있는 인간 구세주가 따로 있었다. 평소 차량 운행과 관련된 크고 작은 위급 상황마다 내게 적절한 진단, 조언과 처방은 물론 결정적인 도움을 늘 꾸준히 베풀고 있는 고향 절친이었다. 병찬이가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진단을 처음 받은 오늘 일련의 사태 초기부터 나는 병찬이와 계속 핫라인을 가동했음은 물론이었다.

     

오늘도 나는 사태의 진전 단계마다 친구 병찬이의 적절한 코치를 받아가며 대처하고 있었다. 예전에 여러 번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친구에게 치명적인 도움을 받았던 터라 오늘도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친구는 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후원자였다.

      

제네레이터가 수명을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약에 야간에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이런 일이 닥쳤으면 정말 큰 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웬만한 시야는 확보가 되는 낮 시간대에다 상습정체 구역이라 차량들이 속도를 올릴 수 없는 것도 그나마 사장님을 도운 겁니다.” 

견인차 기사의 친절한 설명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코치가 이어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속도로 위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면 일단 차량은 포기해야 합니다. 몸부터 무조건 도로 밖으로 피신을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런 다음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해야지요. 그래야만 제2의 더 큰 사고도 막을 수가 있어요. 사장님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경찰에 출동 요청을 해서 최소한 교통 통제라는 도움이라도 받았어야 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번 내가 당한 사고는 여러 가지 여건이 최악은 아니었다. 그래서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만에 하나 야간’ ‘고속도로’ ‘교통 소통이 원활한 곳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이 되었으면 어떠했을 가를 생각해 보니 아찔했다.

     

친구 카센터까진 10킬로미터는 넘지 않겠지요?”

, 멀지 않은 곳에 있네요.” 

    

자동차 종합보험 약관상 긴급출동 서비스는 보통 연 6회까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대세였다. 게다가 오늘처럼 견인차의 도움을 받을 경우엔 주행거리가 1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추가 비용을 보험가입자가 부담해야 했다. 인간 구세주인 병찬이의 카센터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번 이벤트가 병찬이 관할구역에서 터진 것도 나에겐 또 하나의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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