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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16. 2022

졸업 구술고사(4편 완)


                         

    

오늘도 점심 식사는 본관 우측 3~4 시 방향에 자리한 , 싸루비아’ 구역에 모여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이곳은 매년 제철을 맞아 선명한 붉은 꽃의 자태를 자랑하는 샐비어 군락지였다. 게다가 촘촘하고 고른 잔디가 널려 있어 고급 골프장을 능가하는 명당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기준아, 너는 이번 졸구시 통과가 확실하다면서, 이미 소문이 나 있던데...?

친구 서준이는 호들갑을 떨었다.

에이. 아직 오후 시간도 남아 있고. 잘 모르겠어...”


우리는 잔디밭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철퍼덕 앉아 오후 시험에 대한 예상과 대책을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이어갔다. 나는 오후 시간에 배정된 과목에서도 무난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래서 큰 이변이 없는 한 1차 통과가 가능해 보였다. 

    

나의 학부 시절 4년간 성적표엔 A 플러스는 두 개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두 눈을 아무리 부릅뜨고 한번 더 찾아보아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축구 경기를 떠올렸다. 좀 더 가치를 두는 필드골이 아니었다. 실제 필기시험이 아닌 페널티 골, 승부차기 골, 한 걸음 더 양보하여 세트피스 골로 얻은 점수였다.

     

신군부가 쿠데타로 사실권 정권을 찬탈한 이듬해였다. 아주 짧은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군홧발에 무참히 또 한 번 짓밟혔다. 전국 모든 대학은 휴교령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수업 일수가 미달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상적인 강의와 필기시험 대신 리포트로 갈음했다.

      

경제학 개론 과제물이었다. 교과서의 내용을 200자 원고지 20매 이상으로 요약하여 제출하라는 미션을 나는 200매 이상으로 착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과 견줄 때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과제물을 완성했다. 이를 가상하게 여긴 교수는 내게 ‘A 플러스를 선물했다. 이에 이어 이번 졸구시에도 과분하게 같은 레벨의 학점을 받아 들었다. 졸구시 평가는 졸업 가능 여부만을 결정하는데 소용이 있었다. 총학점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누적 평점이 올라가는 혜택은 누리지 못했다. 벼락공부가 아닌 평소 근태 성적이나 평판이 중요함은 회사 조직에선 물론 학교에서도 먹혔던 것이었다. 

    

현직 총장 겸 노동법 담당 채 교수는 워낙 까칠하고 악명이 높았다. 고집불통으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채통’이란 별칭도 얻었다. 이른바 ROTC 간부 후보생을 길러내는 @@@ 학군단은 모교의 명물로 불렸다. 단장 자리란 것이 장군을 배출하는 단골 코스로 소문이 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 채 교수는 평소 무슨 이유인지 이 간부 후보생 양성과정에 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군사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로 분류되어서 그랬는지 확인을 할 수 없었다. 특히 법대생이 ROTC를 지원하는데 것에 관해선 대단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ROTC생이 그것이 학생이야? 군인이지?”

평소 채 교수의 인식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후보 지원생을 학생이 아닌 군인 신분으로 간주했다.

     

몇 해전의 일이었다.이런 상항에서 ROTC 간부 후보생 과정을 밟고 있는 총 동창회장 아들이 바야흐로 졸업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채 교수는 애당초 이 학생에 관해 이미 방향을 정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필답 고사에서 낙제점을 주는 것은 차마 여의치 않았던 것이었다. 그 무시 무시한 좋은 도구인 “졸구시”란 아주 유용한 무기를 동원하기로 작정을 했다. 채 교수는 이 학생이 도저히 답변을 하기 어려운 난해한 문제나 강의 범위 밖의 문제를 들이밀었다.  

   

시험을 마친 후였다. 장군으로 진급하는 단골 코스로 알려진 모교 학군단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 대령은 이미 자존심은 내팽개쳤다. 채 교수의 자택까지 걸음을 하여 애걸복걸했다. 총 동창회장의 아들이 이번에 학부를 졸업하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채 교수는 본인이 결정한 바를 뒤집을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 학생은 제 때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후보생에서 장교로 임관이 무산되었다. 그래서 하사관으로 입대가 결정되었다. 구만리 같은 젊은이의 앞길에 어마어마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채 교수는 이 결정이 자신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터였다. 하지만 후보생이나 다른 제삼자의 입장에선 옹고집의 소산이라 볼 수도 있었다. 결국 이 졸구시의 역기능을 학생 혼자서 고스란히 떠안은 결과였다. 평소 근태나 평판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교수는 편견에 따른 보복성 출제 등으로 정상적인 학부 졸업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소신과 편견이 다른 이에겐 치명적인 불이익을 가져왔다. 안타까운 참사로 기록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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