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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28. 2022

내가 ‘퉁’ 했잖아?(3편 완)


                       

                      

, 나 이제 이번 판만 치고 그만둘 거야.”
 자신은 돈을 많이 따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오늘은 경기장을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순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제 멋대로였다. 이 세상 모두가 자기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했다. 4인 경기 공동체의 진입과 퇴진도 제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점입가경이었다. 우리 이 경기는 결코 도박이 아닌 오락이었다.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물론 반론을 들이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미가 퇴진을 하면 지속적인 경기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엔 다른 선수들의 의사도 물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제 멋대로인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순미였다.  

    

한 때 자신의 통장 잔고가 29만 원 밖에 없다고 겸손을 떨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자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후 국보위를 이끌던 시절이었다. 국보위란 입법, 행정, 사법 3권을 모두 한데 모아 놓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었다. 

    

이 무렵 국보위 고스톱이란 것이 등장했다. 선을 잡은 사람이 선수를 마음대로 지정했다. 점수가 나더라도 스톱을 선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했다. 오늘 고스톱 경기에서의 순미의 행태는 이 국보위 고스톱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국보위 고스톱보다 한 술 더 떴다.  

   

경기 도중 별안간 자리를 맞바꾸는 일, 말이 을 외쳤음에도 바닥 6, 선수 7패를 한꺼번에 나누지 않고 자신이 잡고 있던 화투 몫을 한번 더 쳤던 만행, 제멋대로 이제 경기장을 떠나겠다는 일방적 통보 등은 국보위 고스톱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최고 권력자인 순미 혼자만의 ‘생떼’이었다. 자신은 손바닥의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패를 한꺼번에 나누기가 불편하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그렇다고 신체 조건의 열세를 이유로 말이 퉁을 외칠 권한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르는 순미의 행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었다. 고스톱의 근본 규칙을 마구 흔들어대고 유린하는 쿠데타에 다름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바닥이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나라의 법체계를 무시하거니 고스톱 경기의 근본 규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놈의 퉁은?”

또 퉁이야?”

1·2번 경로당은 내가 퉁을 외칠 때마다 나를 연속해서 질책했다. 잠시 경기를 쉬어가던 중이었다. 경주는 애진이에게 세면장에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기’나 놉을 얻어 볼일 보러 같이 가자는 격이었다.      

순미야! 경주와 애진이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야? 혹시 미끄러졌나? 세면장에 가보아야 하는 것 아니야?”     

그저 거실에서 그랬어도 두 경로당을 나무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두 경로당은 세면장에서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실컷 키득거렸다. 이른바 퉁 관련 사건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국보위 고스톱이 유행하던 시절 삼청교육대란 초법적인 제도가 있었다. 지금 이 삼청교육대가 부활한다면 순미는 영입 대상 영순위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준수야, 나 어제저녁에 저번 그 ‘퉁 사건’ 때문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또 한 번 실 것 웃었어. 너하고 순미 때문에 그날 하루 정말 행복했어...”

이번에 코로나 19 확진자 대열에 새로이 동참한 1번 경로당의 고백이었다. 순미가 아닌 나에게만 건네는 칭찬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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