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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29. 2022

형이 누구인데?(1편)

                            

검사님, 제 사촌 동생입니다. 검사님 대학 후배인데 한 번 뵙고 싶다고 해서요...”

가 대학원 재학 시절이었다. 석사과정 3기였다. 나는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 상준아 혹시 부산에 아는 검사 있어? 무엇 좀 알아보려고.”

내가  조만간 답을 주겠네.”

고향 절친 석호가 내게 부탁을 했다.     

그래 부산지검에 심 검사라고 있어. 그 심검 선배도 이제 많이 올라갔을걸. 한 번 찾아가서 부탁해 보면 될 거야.” 

    

중앙도서관 3층에 자리한 법대생 전용 열람실에서 나와 같이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국립 S대 법대 출신 우 선배가 친절하게 내게 일러주었다.

     

방금 전에 심검에게 나를 소개한 같은 고향 출신 박 선배는 이곳 검찰청 내 총무부서에서 근무 중이었다. 선배는 이미 석호로부터 우리 일행이 이곳 검찰청을 찾은 이유를 모두 전해 들었던 터였다.

      

너의 형이 누구인데? 이름이 어떻게 되지?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자수하면 구속될 텐데... 자수하면 안 되는 거야?”  

   

석호의 형은 부산에서 동파이프 관련 사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최근 갑자기 찾아온 불황 때문에 자금 회전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종 부도처리가 된 바 있었다. 오랜 기간 사업 경력이 있었고 지역 사회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중견 사업가였다. 그러다 보니 거주지를 관할하는 경찰과는 각별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체포하고 구속 영장을 발부받아 정식 사법처리해야하나 이를 유보해주는 혜택을 받고 있었다.  

    

석호의 형은 소재 불명으로 인한 기소중지 상태였다.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피신하고 있는 신세였다. 이곳에서 다른 구역으로 벗어날 경우엔 이 혜택을 계속 이어가기란 언감생심이었다. 만일 불심 검문에 적발되기라도 하면 즉시 정식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도피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좁은 구역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하고자 했다. 자수를 하면 정상을 참작하여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을 받아 실제로 복역하는 처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있을까를 고민 중이었다. 현직 검사인 심 선배는 자신의 신분이 그럼에도 자수를 만류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심검은 우리 일행과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에 자신의 오른 손바닥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은 윗 머리카락 한쪽 더미를 계속 눌러댔다.

    

준사법 기관인 검사는 형사재판에서 원고의 지위에 있다. 경찰은 물론 자신의 휘하에 있는 검찰 수사관을 부려가며 형사 사건의 수사 개시, 지휘, 종결권과 기소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막강한 권한의 소유자이다. 최근 일부 수사, 기소권의 분할이 입법화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절이었다.  

    

명실상부한 수사권 지휘권에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기소편의주의를 누리는 등 다른 외국의 많은 나라와 견줄 때 검찰의 위상은 어마 무시했다. 이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직 검사가 현재 기소중지자에게 자수를 만류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래서 자수를 해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후 정상적인 사회생활 복귀를 노리던 석호 형의 야심 찬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만일 석호의 형과 같은 사례로 자신의 관할 구역 내에서 특정한 범인이 검거되고 형사재판이 진행될 경우 심 선배는 피의자를 구속하고 정해진 사법절차에 따라 한 치의 틈도 없이 검사로서의 책무을 다했을 것이란 추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석호 형은 지연·학연의 덕을 본 셈이었다. 우리가 심검의 조언을 받지 않고 석호의 형이 덜컥 자수라도 했더라면 커다란 곤경에 처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지연· 혈연· 학연을 특히나 많이 찾는다는 우리나라라고 하지만 이는 선진제국에도 좀처럼 없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일단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악수 한 번 땡기고 보는 거야. 같은 검사라도 서울이나 부산 이런 대도시에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검찰청 총무 부서에 근무 중인 박 선배의 이런 오버 액션에 나는 당시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내 사촌 형이라고 둘러대는 대목에선 더욱 그랬다. 난 당시 수험생 신분이었던 반면 박 선배는 이미 생업에 종사한 지 십여 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생활인이었다.

      

나는 그저 온실 속 화초에 불과했다. 박 선배는 세상을 이미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딸린 식구가 있는 가장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처세술에선 나는 박 선배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사법시험 최종 합격이란 일생일대의 과업을 이루지 못한 나도 3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직장생활을 치열하게 마무리했다. 이 박 선배의 처신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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