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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30. 2022

형이 누구인데?(2편 완)

                          

석호와 달리 나는 당시 가장 최고 등급인 새마을호 열차를 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완주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틀 만에 왕복한다는 것은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무리하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컸다. 심검의 도움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일찍이 인권변호사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법대 또 다른 선배인 민 변호사를 심검의 소개로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내가 캠퍼스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해 초여름이었다.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사법 시험 최종 합격의 소식을 듣고 경찰 책임자의 허락 하에 소주 파티를 벌였다는 그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었다.

     

만약 자수를 하더라도 여러 가지를 감안할 겁니다. 부도 수표를 얼마나 회수했는지,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쏟은 노력 등을 참작하겠지요.” 

    

막강한 권한을 자랑하는 현직 심검과 조언의 방식 내용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현직 검사가 아닌 재야 법조인인 변호사의 입장에선 원리 원칙에 입각한 조언으로 상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민변은 무려 자신보다 @년이나 늦게 대학문을 들어선 후배 일행에게 반말이 아닌 경어를 꼬박꼬박 이어갔다.

     

민변은 사법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그래서 대법원장 표창을 받았다. 그럼에도 서슬이 퍼랬던 권위주의 시대 시국 관련 시위 전력 때문에 판·검사 임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엄청난 불이익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심검과 민변의 처지가 바뀌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제법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자신들의 후배 일행인 우리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응대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상준아, 심상치 않다. 예전에 우리가 같이 찾았던 민변이 아무래도 이번에 대통령이 될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한 번 같이 찾아가자. 나중엔 만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30년 후이니 한 세대란 세월이 훌쩍 지난 뒤였다. 메이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인 힐링 캠프를 비롯해 언론에 노출 빈도를 부쩍 늘려가던 민변의 작금의 활동을 지켜본 석호의 호들갑이었다.  


민변은 그 직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선 3% 내외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을 했다. 후 우리나라 헌정사상 유례가 없었던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이 되었다. 이는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찾을 수 없었던 무혈·명예혁명이었다. 이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선 정권이 교체되었다. 석호의 예상이 3년 내외란 세월이 지난 후 적중했다. 민변은 드디어 군 최고통수권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간 여러 번 있었던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마다 일선에서 선거 운동을 경험한 석호의 판세를 읽어내는 내공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당시 민변이 내게 공손히 건네준 명함을 보물처럼 고이 잘 간직하고 있다. 변호사의 직통 전화번호 국번이 세 자리가 아닌 두 자리에 불과했다. 금석지감을 느꼈다.  

    

우리 모교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로 대학주보를 꼽았다. 내가 학부 재학 당시의 일이었다. 민변의 기고 글이 이 대학 주보의 1면을 톱으로 장식한 적이 있었다. 변호사 생활에서 부딪히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관한 고민을 토로한 것이었다.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설정법으로 형사소송법을 언급한 대목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던 처음 대통령 출마 직전 민사모행사장에서의 일이었다. 대학 선후배 동문들이 원탁마다 둘러앉아 민변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는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지지자들 모두는 서로 자신의 모습이 완성될 사진에 제대로 나오도록 좋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까치발 자세까지 동원했다.


170 센티미터에 간신히 턱걸이 한 민변의 신장이었다. 결코 장신이 아니었다. 민변은 우리 선후배 모두를 위해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사진 촬영에 응했다. 평소 겸손이 몸에 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물론 야당의 후보로 정식 지명되기 전이었다.

     

지금의 각국 지도자는 예전의 전제군주가 아니다. 민주국가의 최고지도자는 국민 앞에 이젠 군림해서는 아니 된다. 국민을 섬기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 덕목이었다. 민변은 군 최고통수권자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겸손한 태도를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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