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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31. 2022

싸리 산장 시대(1편)

젊은 날의 낭만, 열정과 고뇌


                             

준수야? 이번 토요일에 시간 낼 수 있니?”
 법대 학생회 고시부장을 맡고 있는 성주가 이번 주말에 여름방학 합숙훈련 장소 사전 답사에 동행을 하자고 부탁을 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을 한 달여 앞둔 날이었다. 우리는 강원도 하진부 시외버스터미널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니, KAEKIMS 증(贈), 이것이 무슨 말이지?”

휴게소 한쪽 벽면에 커다란 거울이 떡 버티고 있었다. 윗부분에 적힌 축 발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래 영문은 도저히 해독이 되지 않았다.  

   

사법시험은 그 시험 범위가 워낙 방대했다. 그래서 학부 4년 내 최종 합격을 이루기가 만만치 않았다. 징병 검사나 군 입대를 뒤로 미루고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계속 수험생활을 이어가는 무리에 멋진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군대를 가지 않고 계속 ‘개긴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었다. 단체 이름이었다. 사법시험 최종 합격의 영광을 얻는 선배들은 대부분 이 ‘개김즈’ 회원들이었다.

      

우리가 합숙 훈련 장소로 이미 찜한 곳은 싸리 산장이었다. 이 산장을 실제 운용하고 있는 ‘이 대빵’ 부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오리지널 강원도 무공해 채소가 주재료인 산채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하진부 휴게소에서 목적지까지는 이사장이 자신의 승용차로 우리를 픽업했다. 

    

우리가 묵을 방 숫자, 건물의 구조, 세면시설, 기타 공간 등을 모두 꼼꼼히 살피는 것이 오늘의 임무였다. 성주보다 상대적으로 장신인 나는 인간 줄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작은 부피의 소형 줄자라도 챙겼어야 했다. 줄자 역할을 내가 대신하기로 한 것이었다.

     

방의 면적을 계산하기 위해 나는 가로 세로 변의 길이를 측정하고자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일어서기를 여나무 번 반복을 해야 했다. 대략 내 키를 6자로 계산하기로 했다. @180센티미터 X 몇 번 방식을 고집했다. 자투리는 손 뼘으로 측정을 했다. 

    

양팔을 최대한 벌려 방 두 변의 벽에 밀착하는 방식으로 길이를 가늠하면 충분했다. 양팔을 까지껏 쭉 뻗어 어림으로 측정하면 그만인 것을. 양팔을 힘껏 펼쳤을 때 팔 끝 사이의 길이와 신장은 대개 일치한다는 상식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음에도 이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랬으면 방바닥에 번거롭게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을 하는 수고가 필요가 없었는데도 우리는 이런 조그마한 요령도 없었다. 몸치 아니면  기계치라는 핀잔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사회과학도였다. 이공계 학도의 마인드를 어는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골수 법학도였다.  

   

어쨌거나 방의 면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인간 줄자인 나는 혁혁한 공헌을 한 셈이었다. 개인용 전기스탠드, 2 내지 3미터 내외의 전선이 달린 콘센트, 세면도구와 면도기, 간편화 등 50여 일간 필요한 개인 장비 목록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책상은 베니어합판을 상판으로 놓고 철제 앵글로 짜 맞추기로 이미 결정한 바가 있었다.  

   

우리 합숙생들이 짐을 푼 곳은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제23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차항리 @@ 법대 합숙생팀이 공식 주소였다. 한여름에도 더위를 별로 느낄 수 없는 산악지대였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의 도움도 필요가 없었다. 기업체의 워크숍이나 각종 수련회 장소로도 손색이 없었다. 언덕 위 푸른 초원 인근의 하얀 집을 방불케 했다. 현대식 콘크리트 구조물에다 10개 내외의 방이 달린 2층 건물이었다. 식당과 별도의 샤워시설은 물론 휴게실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갖추고 있었다. 

     

야산 중턱에 자리했기 때문에 전망도 수준급이었다. 주위가 탁 트인 덕분에 건물 사방 둘레 멀리엔 젖소와 산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잔나무와 전나무 군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올망 졸망한 크기의 둘레가 부드러운 조약돌이 성기게 깔린 공간도 확보하고 있었다. 건물 맞은편 사각형 한변 중간엔 특이하게도 제법 규모가 큰 평행봉이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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