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Sep 01. 2022

싸리산장 시대(2편)

젊은 날의 낭만, 열정과 고뇌

                             

오늘은 점심식사 후 외출을 할 수 있다. 이곳을 벗어나서 어디든지 갈 수는 있지만 자정까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해골을 반드시 누일 것...” 

    

싸리산장에 우리 일행이 짐을 풀은지 5주차에 들어섰다. 예정된 일정 중 벌써 반환점을 돌아서고 있었다. 이번 훈련의 총책임자인 용준 형이 오늘 하루 외출의 날로 정했다. 우리 동기 중 대여섯 명은 강릉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릉 시내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오징어 회를 아직도 먹어보지 못했어? 그럼 이 것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르겠네?”

동기 명수가 내게 일렀다. 우리는 주머니 속의 현금을 모두 탈탈 털어냈다. 300번지 시대 겨울 물오징어 국은 이미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을 구경한 후 처음 맛을 보는 오징어회는 쫄깃한 식감에다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강원도 지역 브랜드 소주인 2홉 들이 경월유리병을 비워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금새 빈병의 숫자는 두 자리수를 넘어섰다.

     

우리는 용준형이 정해준 통금 시각에 맞추기 위해 아쉽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늦은 시각이라서 우리의 목적지인 산장까지 차편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약 4키로미터나 되는 하얀 먼지가 폴폴 나는 비포장도로를 작은 돌멩이를 툭툭 차면서 터벅 터벅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삼천리 강산에~~ 시봉이가 최고로구나 시봉이가 부르실 곡 자유의 곡~~ 맘대로 불러주세요. 고개를 넘자~~”     

만능엔터테이너 겸 명 MC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나보다 학번이 두 해 이른 동구 선배였다. 군살과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빼어난 몸매를 자랑했다. 머리는 짧고 단정하게 손질을 했고 기계 체조 등으로 다져진 근육질 덩어리였다. 남저음 목청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자기만의 색깔과 독특한 노하우를 자랑하는 예능인이라 불러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늘도 자신의 행사 진행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멍석이 깔린 것이었다. 합숙생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회식자리가 마련되었다. 

    

사십여명의 참석자 중 이 노래 부르기 궤도를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차례가 언제 돌아 올지 모를뿐이었다. 평소 삼시 세끼 때보다 오늘은 먹거리가 한 단계 레벨업되었다. 동해 바다에서 조달 해온 물 좋은 신선한 해물 요리와 육군을 재료로한 독특한 메뉴에 안주의 역할을 마음 놓고 맡겨도 부족함이 없었다.


MC가 지목한대로 이름하여 자유의 곡을 부르면 자기 임무는 마무리되었다. ‘노래 권유 송을 전 참석자가 박수를 쳐가면서 선창을 했다. 물흐르듯이 행사는 자연스럽게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

     

에이, 호준이 ! 음치, 음치 노래 한 번 들어보자.”

제가 음치라고요? 아닌데요, 다시 부르겠습니다.” 

    

평소 말빨이 세기로 이름이 난 조 선배가 이번에 MC가 지목한 호준이에게 던진 농담이었다. 조 선배는 호준이를 음치라고 놀리기로 작정을 하고 나섰다. 노래에 관한 한 주로 소리를 다스리는 나보다 조금도 나을 바가 없는 호준이였다.   

   

노래를 이어가던 중간에 노랫말을 까먹었는지, 음정이 불안했는지, 아니면 음 이탈이 있었는지 완주를 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주저앉은 것을 두고 조 선배가 공개적으로 음치라고 놀리며 나섰다. 이에 호준이는 자리에서 다시 벌떡 일어나 전혀 기가 전혀 죽지 않고 노래를 마저 이어갔다. 노래 실력보다 넉살이 국가대표급임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늘도 어김 없이 진땀을 빼야하는 시간이 내게 돌아왔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가슴을 졸이던 순간이었다. 내가 빈 술병에 수저를 꽂은 마이크를 건네받을 차례가 되었다. 건전가요 범주에 충분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고 일어섰다. 다행이었다. 중간에 호준이처럼 자리에 주저앉는 불상사는 없었다. 쉬운 노랫말 덕을 보았다. 노랫말을 온전히 머릿속에서 꺼낼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레퍼터리 중 하나를 고른 덕분이었다. 절친 동기가 앞서 부른 댄서의 순정이 이 행사에는 훨씬 잘 어울리는 선곡임은 나도 인정했다. 하지만 나의 한계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메아리쳐 오면 어둡던 내 마음 멀리 사라지고 ~~”
 며칠 후 동기 명수는 형편 없는 내 노래 실력을 지적하며 빈정거림에 가까운 버전으로 불렀다. 내 노래를 흉내내며 놀려댔다. 나는 노래에 관한 재능을 부모님에게 물려받지 못했음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평생을 떠안고 가야 하는 업보였다.

      

진부령 한 자락 야산의 중턱 야채밭에 우리 동기들 12명이 각자 편한 자세로 모였다.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은 무를 몇 개 뽑아 들었다. 더러는 껍질을 대충 벗겨냈다. 상태가 좋은 건강한 치아를 십분 활용했다. 아삭거리는 무를 유감 없이 즐겼다. 동기들이 둘러 앉은 한가운데엔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등을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대학 축제 시즌에 등장하는 캠프파이어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하는데는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이곳에선 최근 하극상에 가까운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후배에게 어떻게 군기를 잡을까도 논의되었다. 피해 당사자인 본인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동기 차원의 집단 경고나 제재에는 나서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작가의 이전글 싸리 산장 시대(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