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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2. 2022

싸리 산장 시대(3편)

젊은 날의 낭만, 열정과 고뇌


                               

이번 합숙 훈련의 총괄 책임자인 용준 선배 역시 어쩌면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결코 크지 않은 신장에 다부진 체격을 자랑했다.

      

용준 형은 자신의 이상적인 배우자 상을 이미 후배들에게 공개한 바 있었다. 일단 고스톱을 잘 쳐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피부는 우웃빛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론 뛰어난 국수 요리 솜씨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배우자를 만났는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자신의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이렇게 후배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흔치 않았다. 한참 연배가 뒤인 후배들은 매우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웃었다.

     

전체 합숙생들을 모아 놓고 가끔 일장 훈시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흉내를 냈다. 자신의 말에 호응을 하라는 의미였다.

날래 날래 부딪치라우야”

물개 박수를 유도했다.  

    

선배는 후배 몇을 수행원처럼 이끌고 점심 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 인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일반 고속버스나 관광 차량의 승객을 향하여 무작정 손을 흔들어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초등학생들이 흔들어대는 고사리 손에 어림도 없었다. 나는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도 오늘은 손 흔들었어, 웬일이야? 아 네가 준수구나. 내가 시험 감독을 들어가서 주의 깊게 보았어. 고개를 한쪽으로 푹 꿇어 박고선 답안지를 죽어라 하고 메꾸던 애가 바로 너였구먼?”     

그래도 선배가 나를 기억해줌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선배는 평소 앙증맞은 사이즈의 흑· · 적색 만년필 3개를 세트로 항상 지니고 다녔다. 싸리 산장 시대를 마감 후 나도 이런 선배의 뒤를 이었다.      

, 너는 조교 형이 무어 야? 그저 용준형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야.”

평소 선배의 스타일이 익히는 대목이었다.  

   

싸리 산장 시대의 삼시 세끼 식사는 진수성찬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 좋은 바다 생선 요리가 매일 식탁에 올랐다. 오징어, 문어, 미역, , , 고등어, 꽁치 요리 등을 자주 구경할 수 있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상류층의 식사를 방불케 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식사를 챙겨 주실 분들입니다.”

상법 교수는 우리 먹거리를 책임질 요리팀과 상견례 자리를 이곳에 입성하던 첫날 이미 마련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각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운동으로 맨손체조를 마쳤다. 그 후 오와 열을 지어 유격 조교 출신 복학생 선배의 구령에 맞추어 인근 초등학교를 왕복했다. 인근 300미터 내외에 자리한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구보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나는 절친 재경이와 군법무관 2차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2일간 특박 휴가를 얻어냈다. 4일 중 이틀만 응시하기로 했다. 헌법 시험 시간 두루마리엔 공권과 반시적 이익 적혀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던 과거시험장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나중엔 내 석사학위 논문 지도교수가 되었다. 오늘은 민법 교수가 오픈 테스트로 시험을 치렀다. 강평이 이어졌다. ‘연대 채무와 보증 채무의 이동을 논함에 관한 답안을 메꾸어야 했다. 실전처럼 횡으로 넘기는 분홍색 줄이 마련된 10쪽의 답안지도 미리 준비되었다. 실제 답안지 작성요령 등에 관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경우 보증채무를 앞에 두고 연대채무의 특성을 비교하여 언급하는 수순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교수는 강조했다. 같은 콘텐츠의 답안지라도 작성방식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수험생이 받아 드는 채첨 표는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용은 물론 형식이나 테크닉도 무시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택호 후배는 다른 합숙생 보다 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났다.

“쉬! 다른 사람은 조용히 하고. 택호 혼자서 부르는 거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택호는  심수봉 노래 모두가 자신의 18번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특유의 비음으로 심수봉 노래 메들리를 선보였다.

 

어차피 ~~ 인생은 연극이 아니더냐?”

가요 팝송 가곡 모두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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