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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3. 2022

싸리 산장 시대(4편 완)

젊은 날의 낭만, 열정과 고뇌

                         

점심 식사 후 우리는 건물동 앞의 공터에서 배구 토스 연습을 즐겼다. 원형 모양으로 선수들은 둘러섰다. 가운데 술래는 쭈그리고 앉는 신세가 되었다. 선수들이 스파이크를 해서 공이 몸에 맞거나 리시브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술래로 남거나 새로이 술래로 끌려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민법 교수는 소란하다거나 땀을 흘리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 놀이 겸 운동을 반대했다. 나중엔 권유 쪽으로 돌아섰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평소 성격이 꼬장꼬장 한 동기 정수였다. 오늘은 정수의 귀가 빠진 날이었다. 그래서 몇몇 동기와 후배들이 모였다. 급히 마련한 약식 케이크를 자르는 행사를 이미 마쳤다.

 

저와 같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분들은 이쪽 휴게실로 오세요.”

우리 김창완의 노래를 최대한 서글픈 버전으로 불러봅시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아마 3단이라고? 아마가 아니라 아마도라니까.”


아주 멋진 근사한 신조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바둑 실력이 일정한 수준에 오른 합숙생들이 드물지 않았다. 휴식 시간에 바둑 대국을 이어가던 동기간에 어깨너머로 듣던 대화였다. ‘아마도에서 아마를 거쳐 프로의 반열에 오른 긴 어느 분야나 지난한 일로 보였다.

     

사전 동의 없이 이방을 출입하는 자에겐 일정한 벌칙을 가할 지어다. 이름하여 ‘집단 포옹'이다.”

3번 방문에 붙여놓은 경고 문구였다. 

    

잘 잤어?”

이 것, 밥을 먹으러 온 거야 아니면 잠을 자로 온 거야?”

식사 목적적 식사, 국가 목적적 국가라고 보아도 되는 것이야?”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몰려드는 동기간 주고받던 농담이었다. ‘진도 잘 나가고 있어?’ 대신 잘 잤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키도 작았고 평소 공부를 그리 부지런히 하지도 았았어. 여학생을 집적거리던 학생이 어떻게 2학년 때 사범시험 1차에 합격을 했어. 군대도 면제받았기 때문에 검사 임용도 매우 일렀지     

여름·겨울 방학 때마다 합숙 훈련을 따라다니던 스쿨버스 기사의 회고였다. 오늘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현직 검사와 같은 입학 동기 사법연수원생 두 선배가 후배들을 격려차 이곳을 방문했다.

     

아니, 영감님 걱정하지 마세요. 좌석은 좋은 곳으로 비워두었습니다. 비상 예비 좌석은 다 이런 지체 높으신 분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지요.” 

    

이곳에서 용무를 마치고 귀경 편 교통이 마땅치 않은 선배 일행이 경찰에 교통편을 알아보아달라고 미리 연락을 해놓았다. 이에 대한 답신이었다. 이제 겨우 20대 후반에 불과한 현직 검사와 사법연수원생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니 검사의 권한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지금과 달리 현직 판·검사를 나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영감님이란 부르던 시절이었다.

 

선배 일행은 이곳 싸리 산장에 들어서기까지 이미 경찰 사이카의 에스코트도 받았다. 현직 검사의 대단한 위상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회였다.     

권력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 혼자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용준 선배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평행봉 운동에서 가장 기본 동작인 속칭 훌칭이’를 시연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현직 검사와 작년 사법시험에서 최종 합격을 이루어 사법연수원생이 된 자신의 입학 동기가 어제 이곳을 방문했다. 용준형은 만감이 교차했고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평행봉을 이용한 격한 운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인생은 연극이 아니더냐?’란 노랫말을 알고 있어?

아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술좌석에서의 일이었다. 법학과 홍일점 동기는 내 말을 센스 있게 받아넘겼다.

     

형님 그것이 아니야 잘 못 알고 있어. 틀렸다니까. 어차피가 아니라 워 차피가 맞아요.”

 직업 가수의 반열에 이미 바짝 다가선 택호의 결정적인 답변이었다. 20대 초반 젊은 날의 낭만, 열정과 고뇌가 쌓인 싸리 산장 시대였다. 

    

"그래 택호 말이 맞아, 차피 인생은 연극인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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