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Sep 05.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1편)


                            

독서실에서 오는 거지?”
 무슨 이야기야,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자금 막으러 은행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이 무슨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책임자 자격시험을 2개월여 앞두고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직원이 어느 부서 무슨 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형편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해마다 이 자격시험 시즌이 돌아오면 우리 회사는 모두 홍역을 앓았다.

     

직원 수에 여유가 있는 영업점이나 부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짧게는 1개월에서 2개월 동안 일단 일선 업무에서 열외를 인정받았다. 출근부에 자신의 실인을 꾹 누른 후 인근 독서실로 자리를 옮겨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저녁 무렵에 사무실로 복귀하여 퇴근 인사를 마친 후 다시 열공 모드를 이어갔다.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예 출근을 면제받고 모처에서 수험 준비에 올인하는 제일 운 좋은 수험생도 주위에 드물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자주 은행을 오가느라 몸이 녹초가 되어 4층에 자리한 사무실로 복귀하던 나를 보고 입사 동기는 내게 염장을 지른 것이었다. 동기는 인근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다 퇴근 보고를 하러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어떤 일을 할지 최종 결정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저하고 은행을 다녀야 합니다. 이곳 자금부, 그중에도 자금과에 근무하는 동안은 책임자 고시 합격은커녕 아예 공부도 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가 남았어요. 데이트할 시간도 없으니 장가가기도 쉽지가 않아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은행 여직원들과 어떻게 해 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신입사원으로 첫 발령지였던 수도권 영업점에서 이곳으로 최근 전보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하던 날이었. 나보다 6개월 입사가 이른 사수의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다. 이미 이 자금부()란 곳이 허구한 날 이어지는 야근 등으로 우리 회사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근무지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사수로부터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이제 실감이 났다. 내가 초등시절 사화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던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온 신세가 되었다. 앞이 깜깜했다.


모든 것을 여기서 접고 송충이, 솔잎 먹으로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던 사법시험 최종 합격을 이루지 못한데 대한 대가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치르게 되었다는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은행 잔고가 나왔습니다. 다들 퇴근하십시다. 오늘은 정말 일찍 끝났네요.”

, 이런 날도 있네.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같은 자금과 동료 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를 옆에서 직접 들었지만 도대체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일 1030분 언저리에 퇴근을 한다는 것을 두고 이른 시각이라며 반색을 하다니, 앞으로 이곳 근무가 결코 녹록지 않을 것 같았다.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토요일인 오늘은 영등포역 인근 음식점에서 오7시에 고향 친구들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을 마친 후 약속 시각까지 중간 공백을 어디서 무얼 하고 메꿀 것인가를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이 나의 염려는 기우에 그쳤. 은행 마감 잔고가 늦은 시각에 나오는 바람에 나는 우리 약속 시각에 겨우 턱걸이를 할 수 있었다. 

    

너희들, 버르장머리가 없어.”

아니, 과장님, 저희들이 얼마나 어렵고 절박한지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절차와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야.”     


오늘은 내 사수 주도하에 우리 자금과 남자 직원 4명이 한꺼번에 부장실로 몰려가 근무에 따른 애로 상담을 했다. 이곳 자금부로 새로이 전입을 오는 남자 사원 중 책임자 시험 대상자는 모두가 자금과로 업무분장’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결코 아름답지 못한 관행은 내가 이곳으로 전보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부서의 회계과와 증권 관리과는 우리 자금과에 비해 업무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 시각도 상대적으로 매우 일렀다.결산기나 회사 내 자체 감사, 증권감독원 등외부 감사를 받을 경우 외엔 야근을 할 이유가 없었다.


회계연도 말인 3월에 결산을 위해 2 내지 3동안 평소보다 다소 늦은 시각까지 자리를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일시적이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했다.이와 달리 우리 자금과 직원들은 365일 중 근무일 기준으로 약 300일 동안 거의 모두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야근이  일상화된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싸리 산장 시대(4편 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